등록 : 2019.11.06 08:26
수정 : 2019.11.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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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신파극의 플롯을 따르는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시골 청년의 도시 수난기를 통해 근대 도시의 이면을 경고한다. 국내에서 발굴된 희귀 자료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원본 필름인 이 영화는 1930년 서울의 도시 생활사에 대한 정보를 담은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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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87)<청춘의 십자로>
감독 안종화(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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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신파극의 플롯을 따르는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시골 청년의 도시 수난기를 통해 근대 도시의 이면을 경고한다. 국내에서 발굴된 희귀 자료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원본 필름인 이 영화는 1930년 서울의 도시 생활사에 대한 정보를 담은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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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해 무성영화라는 용어는 역설이다. 무성영화가 온전히 무성으로 상영된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 전후의 공연, 변사의 내레이션이 수반되는 상영, 영화와 함께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는 상영 등 무성영화의 역사에서 영화는 언제나 항상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1934년작 <청춘의 십자로>가 발굴돼 2000년대 후반부터 대중에게 선보인 것도 그러한 초기 영화 상영을 변주한 형태였다.
<청춘의 십자로>는 전형적인 신파극의 플롯을 따른다. 같은 마을의 상류층 자제인 주명구(양철)에게 신붓감을 빼앗긴 영복(이원용)은 무작정 서울로 향한다. 머지않아 그는 역에서 수하물을 운반하는 일을 구하고, 근처 주유소에서 일하던 가솔린 걸 영희(김연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편 고향에 있던 여동생 영옥(신일선)은 어머니가 죽자 오빠를 찾아 서울에 오지만 찾지 못한 채 카페의 여급이 된다. 영옥은 그곳을 들락거리던 동향 출신의 개철(박연)과 주명구에게 이용당한다. 이들은 돈을 빌리러 온 영희에게도 손을 뻗는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영복은 개철 일당에게 복수하고 영희와 영옥을 구해낸다.
영화 제목에서 말하는 ‘십자로’는 교차로를 뜻한다. 농촌에는 없는 십자로가 있는 도시. 영화가 그리는 청춘의 도시란 이토록 위험하고 부도덕한 곳이다. 영복은 농촌을 떠난 죄의 대가를 그와 가장 가까운 두 여성이 성적으로 희생되는 것으로 치르게 된다. 그리고 남성은 자신의 여성들을 제자리, 즉 가정으로 귀속시킴으로써 평정을 찾게 된다. 궁극적으로 <청춘의 십자로>는 시골 청년의 도시 수난기를 중심으로 도시의 이면에 대해 경고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대의 산물, 예를 들어 바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들, 진열대를 차지한 갖가지 장식품 등을 전달하는 영화의 시선은 경계가 아닌 매료에 가까울 정도로 욕망과 흥분이 넘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 원본 필름인 <청춘의 십자로>가 비추는 전통과 변화의 충돌은 영화 안에서뿐 아니라 영화의 바깥, 즉 이 작품을 상영하는 현재의 다양한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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