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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5 08:47 수정 : 2019.12.13 09:44

임권택 감독의 <짝코>는 반공 이데올로기 안에서 떠도는 유령에 관한 비애극이다. 한국전쟁 와중에 토벌대장이던 송기열과 빨치산 짝코가 평생에 걸쳐 쫓고 쫓기다 만난 곳은 부랑자 감호소. 영화는 플래시백 형식을 이용해 분단의 역사가 이들의 삶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부쉈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86) <짝코>
감독 임권택(1980)

임권택 감독의 <짝코>는 반공 이데올로기 안에서 떠도는 유령에 관한 비애극이다. 한국전쟁 와중에 토벌대장이던 송기열과 빨치산 짝코가 평생에 걸쳐 쫓고 쫓기다 만난 곳은 부랑자 감호소. 영화는 플래시백 형식을 이용해 분단의 역사가 이들의 삶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부쉈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한반도에 지치지 않고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빨갱이’라는 유령. 남한에서는 누구나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를 두려워한다. 연좌제는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따라왔고, 정적들은 서로를 공격할 때 가족의 과거를 뒤졌으며, ‘빨갱이’라고 부른 다음 반성문을 요구했다. 분단의 역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임권택의 <짝코>는 반공 이데올로기 안에서 떠도는 유령에 관한 비애극이다.

행려병자인 송기열은 길가에서 부랑자 수용소로 이감된다. 그리고 거기서 짝코를 만난다. 여기가 영화의 시작이다. 한국전쟁 중 토벌대장이었던 송기열은 지리산에서 별명이 짝코인 빨치산 백공산을 체포하지만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놓친다. 그때부터 송기열은 짝코를 쫓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는 동네 소문에 자살한다. 짝코는 도망쳐 다니면서 몇번이고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몸만 망가져간다. 임권택은 감호소 안에서 초라한 그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두 사람 사이의 긴 세월을 플래시백으로 오가면서, 엉킬 대로 엉켜 뒤섞여버린 역사의 끈질긴 실타래를 대가의 솜씨로 엮어나간다. 이때 플래시백이라는 구조는 형식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 분단의 역사이자 ‘빨갱이’의 유령이 어떻게 쫓는 쪽과 쫓기는 쪽 모두의 삶을 무자비하게 부수는지 보여주는 시간의 알레고리가 된다.

임권택은 여기서 애도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지리산에서 죽어간 사람들. 좋은 세상을 믿었던 사람들. 그들이 ‘뿔 달린 도깨비’라고 믿었던 사람들. 그래서 평생에 걸쳐 도깨비를 쫓아다녔던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김영동은 마치 신음하듯 산골짜기에서 나지막하게 이쪽과 저쪽 할 것 없이 그들을 위해 진혼곡을 부른다. 송기열은 짝코를 데리고 고향에 가는 열차를 타지만 미처 도착도 하기 전에 짝코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송기열의 어깨에 기대 숨을 거둔다. 송기열의 눈에 고향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고향. 떠도는 역사. 그 한을 누가 달래줄까. <짝코>는 슬프고, 슬프고, 슬프고, 슬프고, 슬픈 탄식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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