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4 18:13
수정 : 2019.11.05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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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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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ㅣ김도영 감독 인터뷰
“영화에 달리는 악플·평점 테러
그 자체도 우리 사회 풍경…
‘70년생 김도영’ 삶도 녹아든 작품
대중과의 소통 많이 고민했는데
관객들이 알아봐 주셔서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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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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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스크린 너머로 따스한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개봉 11일째인 지난 2일 관객 200만을 돌파했다. 꾸준한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에 성공한 <알라딘>(최종 1255만1456명)과 같은 속도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은 4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영화를 만들 때 장면마다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걸 관객들이 알아봐주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어머니 관객이 많다는 소식이 특히 반갑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도 “첫 장편영화인 만큼 좀 더 날카롭고 관객의 폐부를 찌르는 작품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토론과 합의를 거쳐 상업영화로서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하면서도 몸을 낮춰 많은 사람과 만나면 좋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그 바람대로 영화는 ‘평점 테러’와 ‘악플 세례’를 뛰어넘어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데는 ‘70년생 김도영’의 삶이 녹아든 덕도 크다. “제가 세 자매의 맏딸인데, 할머니 손에 컸어요. 할머니는 우리를 사랑해주신 좋은 분이셨지만, 어머니가 아들 못 낳았다고 구박을 하셨죠. 막내가 저와 11살이나 차이 나는 것도 아들 낳으려다 그렇게 된 거예요. 영화 속 지영이 할머니를 그릴 때 우리 할머니를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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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촬영 현장에서 배우 정유미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김도영 감독(오른쪽).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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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꿈꾸며 진학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그는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 졸업하고도 계속 연극 무대에 섰다. 동료 배우와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배우 일을 쉬었다. 둘째 아이까지 낳고 나니 연기는 먼 나라 일이었다. 2017년 늦깎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대학원) 과정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그때 만든 단편영화가 자전적 얘기를 담은 <자유연기>다.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 단절된 여배우가 어렵게 오디션에 가요. 중요한 배역인 줄 알고 준비 단단히 하고 갔더니 겨우 대사 두줄짜리인 거예요. 실망하고 나오려다 갑자기 독백을 시작해요. 그러면서 막 울어요. 제 경험과 고민을 녹여낸 얘기였죠.” 이는 지난해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사회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당시 관객상도 받았는데 그게 더 기뻤어요. 영화 상영 뒤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여성 관객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뭔가 다가갔구나 느꼈죠.”
그는 <자유연기>를 만들 때 지인이 영화에 도움이 될 거라며 추천해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책을 보면서 떨어져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자유연기>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뭔가가 통했는지 <자유연기>를 본 영화사 쪽에서 연락이 왔다. <82년생 김지영> 연출을 제안한 것이다. 이를 수락하고 각색 작업부터 시작했다.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경험도 자연스럽게 들어갔어요. 수족구에 걸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게 되자 직장에 데려간 에피소드, 연기를 전공한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만 능력을 발휘한다는 에피소드는 원작에 없는 걸 제가 넣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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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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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한 영화가 평점 테러와 악플에 시달리는 걸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책 한권, 영화 한편을 두고 이렇게 된다는 것 자체도 우리 사회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화내고 욱하는 데서 더 나아가 뭐가 문제인지 들여다보면 좋겠다, 이 영화가 저쪽 세계를 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누구는 보지도 않고 휙 지나가고, 누구는 멈춰 서서 가만히 들여다보겠죠. 다행히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좋아요.”
그는 조남주 작가의 팟캐스트에서 들은 얘기를 소개했다. “오이가 아무리 싱싱해도 식초에 담기면 피클이 되죠. 우리가 어떤 문화·관습·시선 안에 있는지를 봐야 해요. 영화 속 인물들도 모나고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식초에 절었을 뿐이에요. 책 한권, 영화 한편이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식초를 묽게 만드는 물 한 방울이라도 됐으면 해요. 언젠가 <82년생 김지영>이 사람들이 1도 공감하지 못하는, 전래동화 같은 얘기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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