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8 09:09
수정 : 2019.10.28 09:12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79)장군의 수염
감독 이성구(1968년)
|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소설 <장군의 수염>을 김승옥이 각색하고 이성구가 연출한 이 작품은 한 사진기자의 의문의 죽음을 좇는다. 경찰은 한때 그가 쓰려 했던 소설 ‘장군의 수염’을 알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 이 소설은 신동헌 화백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문학은 영화와 어떤 사랑을 나누었을까. 그 사랑을 문학 쪽에서는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누군가는 도둑질이라고 비난했고, 다른 누군가는 우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영화는 문학에 관심이 많다. 지치지 않고 베스트셀러를 넘보았고, 재능 있는 작가들은 종종 시나리오를 쓰느라고 시간을 탕진하였다. 아마도 거기에 김승옥이라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위대한 김승옥. 달리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김훈 작가는 문인이었던 아버지가 친구들과 “김승옥이라는 벼락을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라고 썼다.
김승옥은 1966년 <무진기행>을 쓴 다음 각색을 해서 자신의 소설이 김수용이 연출한 영화 <안개>로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첫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영화 <감자>를 연출하였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김승옥은 충무로를 떠나지 않고 계속 각색을 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1966년 문학평론가 이어령이 발표한 소설 <장군의 수염>을 1968년에 김승옥이 각색했다. 당대의 문학적 재능. 그들은 여기서 모더니즘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살한 사진기자. 형사는 이 사진기자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입체적인 구조 안으로 들어선다. 질문은 누가 죽였는가에서 왜 죽었는가로 옮겨간다. 이성구는 단순하게 그걸 연출만 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 음울한 1968년 서울의 겨울을 부여하고 싶어 했다. 김승호의 연기는 이 이상한 이야기에 설명하기 힘든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신성일은 마치 소설에서 걸어 나온 청춘의 실패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순간은 주인공이 쓰던 소설 ‘장군의 수염’을 담아낸 신동헌의 애니메이션이다. 기습적으로 등장하는 이 짧은 단편은 단 한마디로 걸작이다.
<장군의 수염>은 서로 다른 재능들이 일시에 한자리에 모여서 마치 세션을 벌이는 것처럼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헤어진 희귀한 순간이다. 서로 다른 여러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것만 같은 영화. 하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두번 다시 이런 순간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정성일/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