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K-무비’의 미래】①미국
‘기생충’ 북미 평단·관객들 호평
개봉 첫주 외국어 영화 최고 기록
“아이디어 고갈 할리우드에 단비”
‘숨바꼭질’ ‘써니’ ‘극한직업’ 등
CJ ENM, 미 현지 스튜디오와
리메이크·신작영화 합작 한창
라틴계 등 타깃층 다양화 전략도
4DX·스크린X 상영관 등 극장 진출
개봉 예정 블록버스터에도 쓰여
1919년 10월27일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가 첫선을 보인 지 올해로 꼭 100년. 그동안 한국 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겨레>는 지난 5월부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100편을 기록하고 소개하는 창간기획 ‘한국영화 100년, 영화 100선’을 연재하고 있으며 유실 영화, 한국 영화 스타들, 북한 영화, 여성 영화 등을 소개하는 기획을 통해 한국 영화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이제 한국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진단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전망한다.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아시아, 그리고 영화의 본고장 미국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케이(K)무비의 세계화’를 꿈꾸는 한국 영화. 다시 시작되는 100년, 한국 영화는 세계 영화 시장의 변방이 아닌 중심으로 좌표 이동을 할 수 있을까? 두차례 기획을 통해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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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 랜드마크 극장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박소담이 관객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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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드 아웃, 솔드 아웃, 솔드 아웃.’
지난 12일(현지시각) 낮 12시4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위치한 랜드마크 극장. 전광판에 한국 영화 <기생충>의 상영정보가 안내됐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박소담이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된 이날 낮 1시10분 상영 회차는 물론 다음날 오전 11시35분, 오후 4시25분, 6시 회차는 일찌감치 ‘솔드 아웃’(매진) 표시가 떴다. 상영관 앞에는 30분 전부터 10명이 넘는 관객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300석 규모의 극장 안은 빈 좌석을 단 한자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러닝타임 내내 객석에서는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봉테일식 유머’는 관객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적중했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고는 객석의 반응이 좀더 격렬하다는 것뿐.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에 ‘봉·준·호’ 이름 석자가 뜨자 “판타스틱”이라는 외침과 함께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뒤섞였다. 이어 봉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 대부분이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20분 남짓의 대화 시간에는 사회자가 “시간이 다 됐다”고 제지할 때까지 칸 국제영화제 수상 소감, 촬영 뒷이야기, 미국 흥행 예상치 등에 관한 10여가지의 질문이 쏟아졌다.
남자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은 타나즈(31)는 “평소 봉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 선개봉 첫날 표를 예매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미국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유머코드, 계층 문제를 다루는 강렬하고 개성 있는 연출에 매료됐다”는 소감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미국 시장 공략의 첨단에 선 영화 ‘기생충’ <기생충>의 미국 시장 진출은 ‘케이(K)무비’의 미래를 타진하는 가늠자로 여겨지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이 작품이 미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내년 2월 아카데미상까지 거머쥔다면, 한국 영화는 ‘변방’에서 벗어나 ‘중심’으로 큰 걸음을 내딛게 될 터다.
지금까지는 곳곳에 청신호다. 지난 11일 엘에이 랜드마크와 아크라이트 할리우드 극장, 그리고 뉴욕 아이에프시(IFC) 센터 등 3곳에서 선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첫주 37만6264달러(약 4억4500만원)를 벌어들였다. 개봉관당 평균 12만5421달러(약 1억4800만원)를 번 셈인데, 이는 역대 북미 개봉 외국어 영화 최고 기록이다. 이후 18일부터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턴디시(DC) 등에서 33개관으로 확대 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10일째 미국 박스오피스 10위,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1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4일 기준으로 누적 수익도 200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평단과 관객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는 신선도 99%, 비평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는 평점 95점을 기록 중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제임스 건 등 유명 감독들 역시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극찬했다. 할리우드 시상식인 ‘2019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는 봉 감독에게 ‘올해 최고의 영화 제작자 상’을 안겨 아카데미 전망을 밝혔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의 톰 퀸 대표는 “지난해 11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반드시 배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섣부르게 단정할 순 없지만 아카데미 주요 부문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만일 수상한다면 아카데미의 최근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또 칸에 이어 아카데미까지 인정한 한국 영화의 위상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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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상영 중인 미국 로스엔젤레스 랜드마크 극장 전광판에 ‘매진’을 알리는 표시가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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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를 위한 잰걸음…한·미 합작영화 <기생충>의 성공과 함께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한국 영화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수년째 누적 관객 2억명 수준에서 정체된 국내 영화 시장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중국과 더불어 세계 빅2 마켓으로 꼽히는 미국은 글로벌 박스오피스 매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글로벌 영화 산업의 물적·인적 인프라가 집약된 시장이기에 미국에서의 성공은 곧 전세계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
미국 시장 진출의 맨 앞줄에 선 것은 국내 1위 투자 배급사 씨제이이엔엠(CJ ENM)이다. 씨제이이엔엠은 국내에서 흥행한 <숨바꼭질> <수상한 그녀> <써니> <불한당> <극한직업> 등을 유니버설·엠지엠(MGM) 등 미국 현지 스튜디오와 손잡고 리메이크 버전으로 제작한다. 또 <엔딩스 비기닝스> <프레스 플레이> <오로라> 등 신작 영화를 합작하는 등 12편을 미국 현지에서 기획·제작 중이다. 과거 <올드보이> <엽기적인 그녀> 등 국내 흥행작의 리메이크 판권이 할리우드에 팔려 제작된 사례는 있지만, 이렇게 유명 스튜디오와 합작을 한 경우는 거의 전무했다.
씨제이이엔엠 영화사업본부 고경범 해외사업부장은 “2009년부터 미국 직배 사업을 하면서 쌓은 네트워크와 브랜드 이미지, 합작영화 제작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오리지널 아이피(IP·지식재산권) 등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수상한 그녀>와 <써니>를 중국·베트남·일본·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성공을 거둔 전략이 미국에서도 통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써니> <극한직업>을 합작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피터 크레이머 프로덕션 대표는 이런 전략을 “영리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티브이 쪽에서는 여러 포맷을 이용해 아이피를 재가공하고 있지만, 씨제이처럼 한 영화를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씨제이의 아이피 또한 매우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타기팅 대상을 정교화하는 것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미국에서 최근 중저예산 영화의 수익률이 증가하고 비백인, 특히 히스패닉의 티켓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흐름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다. 판텔리온 필름과 합작해 <수상한 그녀>의 스페인어 버전을, 엠지엠과 영어 버전을 제작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판텔리온 필름의 에드워드 앨런 최고운영책임자는 “<미스 그래니>(가제)는 이달 촬영에 돌입했다.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감동 코드, 코미디, 음악적 요소, 판타지적 분위기 등 한국과 정서가 유사한 라틴계 관객이 좋아할 다양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미국 75개 도시를 비롯해 멕시코·남미 등에서 대규모 배급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 영화의 미국 진출 전망에 긍정적인 예측을 내놨다. 네온의 톰 퀸 대표는 “케이팝을 앞세운 한류열풍과 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한 한국 콘텐츠의 확산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본다”며 “봉준호·박찬욱·김지운 등 미국에서도 팬층을 확보한 개성 넘치는 감독들의 활약도 기대감을 높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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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씨지브이(CGV) 2호점 CGV 부에나 파크(Buena Park)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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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DX·스크린X 등 토종 기술력 앞세운 극장 진출 소프트웨어인 영화 콘텐츠에 견줘 하드웨어 격인 극장 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씨제이씨지브이(CJ CGV)만이 한국 교민이 다수 거주하는 엘에이의 할리우드 인근과 오렌지카운티에 각각 1호점인 씨지브이 엘에이(3개관 600석)와 2호점인 씨지브이 부에나파크(8개관 1187석) 두곳의 극장을 운영 중이다. 한국 교민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샌프란시스코에 내년 상반기 문을 여는 3호점(14개관 2천석)이야말로 한국 극장의 확장성을 가늠하는 본격적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극장 진출이 더디다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감체험 특별관인 4디엑스(DX)와 3면이 스크린인 다면 상영 특별관 스크린엑스(X)의 기술력은 미국 시장의 빗장을 여는 강력한 무기다. 씨제이포디(4D)플렉스는 현재 미국에서만 4DX 27개관, 스크린X 32개관 등 모두 59개관의 특수관을 운영 중이다. 씨제이는 지난 10년간 400편이 넘는 할리우드 영화를 4DX 버전으로 제작했다. 포디플렉스가 운영하는 4DX랩에서는 이미 앞으로 개봉할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12월), <포드 대 페라리>(12월), <탑건: 매버릭>(내년 6월)의 트레일러에 4DX 기술을 입혀 데모 상영을 한 뒤 각 제작사와 4DX 버전 제작에 관해 논의 중이다.
씨제이포디플렉스 최연철 미국법인장은 “파라마운트·폭스 등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4DX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를 선정한 뒤 개봉 3주 전에 원본 영화에 4D 코딩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지난해 <보헤미안 랩소디>, 올해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 등을 스크린X 버전으로 상영해 호평을 받았다. 한국 토종 기술인 스크린X는 상대적으로 설치 비용이 저렴해 시장 확장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기술 개발과 업그레이드 자체가 미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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