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3 08:14
수정 : 2019.10.10 09:46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71) 왕의 남자
감독 이준익(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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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만명을 돌파한 <왕의 남자>는 영웅이 아닌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짜임새 있게 재구성한다. 이준익 감독은 광대들과 연산을 두 축으로 해서 연산의 기행을 야기한 조선왕조의 비극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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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2005·감독 이준익)의 영화사적 의의는 먼저, 2000년대에 가장 적은 제작비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이자 기존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작품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행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아 개봉 1일차 상영관 수는 207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 쟁쟁한 블록버스터들에 이어 세번째로 천만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이듬해에는 다시 제작비 110억원의 대작 <괴물>(2006)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톱스타도 출연하지 않았는데 <왕의 남자>가 이처럼 가성비가 뛰어났던 것은 팩션 사극이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한 몰입감과 터질 듯한 에너지 때문이다. <황산벌>(2003)을 통해 스크린에 영웅이 아닌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써내려갔던 이준익은 이 작품에서 광대들과 연산을 대면시킴으로써 연산의 기행을 야기한 조선왕조의 비극을 재조명한다. 왕실과 중신을 대담하게 희화화하는 광대들, 그것을 자조하며 함께 즐기는 왕, 그런 왕을 몰아내고자 하는 대신들이 신분제도와 계급갈등이라는 서사의 수직축을 담당한다면, 수평축에는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 ‘연산’(정진영)의 삼각관계가 있다. 공길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가족사로 인한 트라우마에 빠져 자신의 위로와 구원을 바라는 연산에게 연민을 느낀다. 같은 맥락에서 배를 곯더라도 왕실의 구속을 바라지 않는 광대들과 왕좌에 있으면서도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왕의 위치는 전복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신분에 속박되지 않는 삶을 열망한다는 점에서 왕과 광대는 다시 평행선상에 놓인다. 씨실과 날실을 교차시키는 솜씨가 절묘하다.
<왕의 남자>가 묘사하는 왕실과 조정의 위선, 권력을 향한 암투는 역사를, 인물들의 다양한 고통과 갈등은 인간을 다시 보게 한다. 그것이 21세기 정치와 사회, 현대인들의 삶과 겹쳐지지 않았다면 1230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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