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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9 11:03 수정 : 2019.09.29 20:35

10월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10월2일 개봉 영화 ‘조커’
올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만화 원작으로 첫 수상 ‘이변’
절대악이 된 ‘조커의 기원’ 다뤄

10월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어벤져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마블 영화 전성시대에 그나마 디시(DC) 영화 팬들의 자존심을 지켜준 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었다. 특히 히어로 영화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2편 <다크 나이트>에서 주인공 배트맨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은 건 악당 조커였다. 광기가 번뜩이는 조커를 연기하고 2008년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는 전설이 됐다. 이제 디시 팬들은 자존심을 지켜줄 또 하나의 ‘조커’ 카드를 얻었다. 10월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다.

<조커>는 희대의 악당 조커의 탄생을 다룬 영화다. 디시코믹스의 캐릭터에서 출발했지만, 스토리는 만화에서 가져오지 않았다. 만화에는 조커의 기원에 대한 에피소드가 없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각본가 스콧 실버와 함께 만화 속 세상이 아닌 현실세계의 조커를 떠올렸다. 평범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절대악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들은 처음부터 조커 역에 호아킨 피닉스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고 한다.

10월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배경은 1980년대 초 고담시. 늙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가난한 청년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꿈은 코미디언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늘 웃으며 살라”고 ‘해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광대 일을 하는 아서는 스스로 행복하지도, 남들을 웃기지도 못한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웃음거리로 전락하기 일쑤다. 아서는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아무때고 웃음이 터지는 병을 앓고 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기괴한 웃음은 그를 자주 곤경에 빠뜨린다. 어느날 주체할 수 없는 웃음 때문에 촉발된 우연한 사고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 이후 공중화장실에서 기묘한 춤사위를 펼치며 죄책감 대신 자신의 존재감과 묘한 희열을 느낀다.

호아킨 피닉스는 빈약한 아서를 연기하기 위해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으면서 23㎏을 감량했다. 힘없고 여린 사회 부적응자에서 내면의 증오와 폭력성을 발견하고 증폭시키며 괴물로 변해가는 일련의 과정을 섬뜩한 연기로 설득해낸다. 머리칼을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허연 얼굴에 입꼬리를 길게 치켜올린, 우리가 아는 그 조커 분장을 하고 긴 계단을 내려오며 춤을 추는 순간, 아서에서 탈피해 완벽한 조커로 탄생한다. 이 순간만큼은 잭 니콜슨, 히스 레저 등 조커 전임자들의 이름을 까맣게 잊게 만들 정도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강렬하고, 미장센(화면의 구성과 구도)은 예술적이다.

10월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호아킨 피닉스는 지난 26일 한국 기자들과 원격 화상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를 개봉 때 봤지만, 전임 연기자들을 많이 참고하지 않았다. 우리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조커의 역사와 삶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과거 히스 레저는 조커 배역에 너무 깊게 몰입한 나머지 후유증으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반해 호아킨 피닉스는 “오늘은 더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배역에 심취할수록 소진되거나 고갈되는 게 아니라 되레 에너지가 솟고 동기 부여가 됐다”고 했다.

고담시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로 그려진다. 빈자는 부자를 증오하고, 부자는 빈자를 멸시한다. 재정 형편이 어려워진 시당국은 당장 빈자에 대한 지원부터 줄인다. 결국 빈자는 조커를 추앙하며 폭동을 일으키고, 고담시는 ‘배트맨’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어둠과 혼돈의 도시로 변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화상 간담회에서 “영화 속 배경은 1980년대 초이지만 각본을 쓴 건 2017년이다. 영화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사회·경제적 지위 문제나 취약계층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논의하게 된다면 가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커>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뜨겁게 대두된 계급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10월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호아킨, 23kg 감량하며 ‘인생연기’
“에너지 쏟을수록 날 채워준 배역”

영화는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배트맨과의 연결고리도 내비친다. 폭동에 휘말린 토머스 웨인 부부가 위험에 처하는 장면에서 어린 아들 브루스 웨인을 비춘다. 브루스 웨인은 훗날 배트맨이 되어 조커를 비롯한 고담시의 어두운 세력에 맞서 싸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실제인지 허구인지 모호한 의문부호를 남긴 채 엔딩 자막이 올라간다. 이에 대한 질문에 토드 필립스 감독은 “열린 결말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말에 대해 정확한 답을 드릴 수 없다. 관객들이 각자 해석하는 재미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조커>는 이달초 제76회 베니스(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코믹스 기반 영화가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코믹스 기반인데도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 다른 전복적인 영화라는 점이 수상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도 큰 구실을 했다”며 “<조커>가 코믹스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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