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5 07:48
수정 : 2019.10.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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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양반집 딸 ‘길례’(원미경)는 수절, 수청, 강간, 씨내리, 자살 등 조선시대 여성들이 강요당한 온갖 잔혹 행위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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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7)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감독 이두용(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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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양반집 딸 ‘길례’(원미경)는 수절, 수청, 강간, 씨내리, 자살 등 조선시대 여성들이 강요당한 온갖 잔혹 행위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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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여성의 ‘희생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가부장제도에 희생된 수많은 여성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길례’의 기구한 인생을 통해 전해진다. 가난한 양반집의 딸 길례(원미경)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세도가의 죽은 아들에게 시집을 간다.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로 살아가던 중, 집안에 기거하던 도령에게 강간을 당하고 시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집을 떠난다. 떠돌다가 만난 머슴 윤보(신일룡)에게 다시 시집을 가서 행복해지려는 찰나, 길례는 일하던 집의 대감에게 수청을 강요당하고 분노한 윤보는 그를 살해한다. 도망길에 이들은 몰락한 윤보의 가문이 복권된 것을 알게 되고 양반으로 부활한다. 그러나 길례는 혼인한 지 3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또다시 희생양이 된다. 소실을 들여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윤보는 길례에게 씨내리를 강요하고 이로 인해 아들을 낳은 길례에게 은장도를 안겨준다. 은장도를 품고 길례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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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양반집 딸 ‘길례’(원미경)는 수절, 수청, 강간, 씨내리, 자살 등 조선시대 여성들이 강요당한 온갖 잔혹 행위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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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 영화는 길례라는 한 여자의 대서사극을 그리고 있지만 그녀가 죽음을 포함해서 조선시대 여성으로 수행해야 했던, 예컨대 수절, 수청, 씨내리에 이르는 갖가지 역할들은 가부장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여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악행들이다. 역설적인 것은 영화가 그리는 이 모든 보수적 가치들이 높은 수위의 에로티시즘을 통해 보여진다는 사실이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와 아울러 여성이 보수적 가치로 희생되는 영화들에 에로틱한 재현 모드가 적용된다는 점은 두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여성에게 강요하는 가치와 착취하는 가치가 양존하는 남성적 시선의 역설. 둘째는 1980년대 들어 한국영화가 에로티시즘을 활용하는 범위 혹은 장르(사극에까지)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물레야 물레야>가 동시대 ‘토속 에로’ 영화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이유는 영화의 해학이다. 청상과부인 길례 앞에선 방아를 찧지 말라는 시어머니의 호통이나 윤보의 물그릇에 이파리를 띄워주는 길례의 모습 등은 잘 그려진 전래동화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한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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