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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6 18:19 수정 : 2019.09.16 20:28

영화 <와인스타인>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유명 배우·비서·인턴까지 100여명
권력으로 여성들의 성 착취한
거물 제작자 와인스타인 만행 파헤쳐

영화 <와인스타인>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와인스타인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의 바람과 같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불붙은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유력 정치인 안희정, 연극계 대부 이윤택, 세계적 영화감독 김기덕, 유명 영화배우 조재현, 영원한 노벨문학상 후보 시인 고은…. 권력을 쥔 남성들의 치부와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억압 속에 숨죽였던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냈던 ‘미투 운동’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서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 이후 약 600일.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의 시발점을 되짚으며 그 성과와 과제를 돌아보게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와인스타인>이 오는 26일 개봉한다.

와인스타인은 영화사 미라맥스의 설립자이자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회장으로 <굿 윌 헌팅>, <반지의 제왕>, <킬 빌>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를 만든 제작자다. 다큐 <와인스타인>은 그가 어떻게 동생 밥과 함께 할리우드의 슈퍼 갑으로 성장해 갔는지, 그리고 그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 여성들의 꿈을 착취했는지를 낱낱이 밝힌다.

영화 <와인스타인>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불과 27살의 나이에 미라맥스를 세운 와인스타인에 대해 주변인들은 “추진력이 상당하다”거나 “아이디어가 넘친다”고 평가하면서도 “그 이면에 폭군과 같은 성격이 있다”고 짚는다. 맘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 대리석 재떨이를 던지거나 폭언을 퍼붓는 등의 행위는 종종 ‘리더십’으로 포장됐다. 와인스타인이 손댄 영화가 잇단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할리우드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그리고 이렇게 반성과 성찰, 견제 없는 거대한 권력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데 이용한다. 귀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레아 세이두 등 유명 여배우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회사 직원, 비서, 언론인, 심지어 20대 초반의 인턴에까지 피해자는 무려 100여명에 달한다.

영화는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 여배우, 직접 피해를 당했거나 피해 사실을 보고 들은 미라맥스 직원, 부패한 왕국을 떠받치는 데 일조한 동료 등 광범위한 인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비 와인스타인’의 악행을 조곤조곤 파헤친다. 가십에 가까운 자극적 내용을 부각하거나 흡입력을 높이기 위해 특정 사건을 짜깁기하기보단 사실 전달에 치중한 모양새다. 새로운 내용을 발굴하기보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객관적 팩트를 인터뷰를 통해 증명하고, 그 사이사이 와인스타인과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 등을 끼워 넣어 이해를 돕는 식이다. 이 사건이 ‘뉴스’로 보도되기까지 와인스타인의 뒤를 쫓아 취재를 해 온 여러 기자의 영상을 넣어 나름의 균형감도 유지한다. 다만, 효과음이나 극적 구성을 배제한 탓에 단조롭고 평이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 <와인스타인>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영화에는 기자들이 확보한 와인스타인의 녹취 파일도 공개된다. “그때 왜 내 가슴을 만졌냐”는 피해자의 물음에 “습관이 돼서 그렇다”고 답하는 와인스타인의 뻔뻔함은 실소를 자아낸다. “배역을 따기 위해 잠자리까지 했다”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악성 루머, “사실을 눈치채고도 눈 감고 귀 막았던 우리도 공범”이라는 동료들의 고백은 남성 권력자 중심 사회에서 벌어지는 천편일률적인 성 추문 사건의 민낯이다.

우르술라 맥팔레인이 메가폰을 잡고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가 제작을 맡은 <와인스타인>의 원제는 ‘언터쳐블’(Untouchable), 즉 ‘건드릴 수 없는 (권력)’이다.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 덕분에 전 세계의 ‘건드릴 수 없는 권력’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다소 뒤늦은 감이 있는 다큐 <와인스타인>의 개봉이 반가운 것은 이 영화가 끝나지 않은 미투 운동 당위성을 증명할 ‘사초’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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