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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4 09:24 수정 : 2019.09.14 09:33

[유선희 기자의 추석놀이]
윤필립 평론가와 함께 무비로드맵 작성
“이탈리아, 인도, 하와이…모두 니가 가라”

짧지만 천금같은 추석 연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요? 취향도 담당 분야도 모두 다른 <한겨레> 문화팀 기자들이 소개합니다. ‘나 추석에 이거 하고 놀래!’

“명절 연휴가 싫다!”

남들 다 반기는 연휴가 싫은 청춘들이 있다. 부모·친지의 선을 넘는 잔소리, 왕복 8시간은 기본인 꽉 막힌 도로, 넉넉치 못한 주머니 사정…. 단 돈 1만원이면 족하다는‘나홀로 관람’을 위해 집 앞 극장이라도 나설까 잠시 고민 하지만, 양치하고 머리 감는 것조차 귀찮다면? 걱정하지 말자. 방구석에 앉아서도 세계여행·팔도유람을 하며 잠시나마 낯선 로맨스까지 꿈 꿔 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 취향에 맞게 장르도 각양각색인 여행 영화를 통해 몇백 만원짜리 크루즈 여행 못지 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자, 출발! 영화평론가 윤필립과 한겨레 영화담당 유선희 기자가 추천하는 4박5일간의 방구석 영화 여행.

<로마의 휴일>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유선희 기자: 여행의 끝판왕은 바로 ‘이탈리아’지. 수십년째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순위가 아니던가.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뜯어볼 수 있는 대표 영화 세 편을 추천한다.

<로마의 휴일>(1955)

세계의 명화로 꼽히는 이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적 있나? 짧은 토막 영상 말고, 연휴를 이용해 꼭 다시 보자. 유럽 각지를 친선방문 중인 공주 앤(오드리 햅번)이 로마에 체류 중, 꽉 짜인 일정에 신물이 나 대사관을 몰래 빠져나온다. 수면제 과음으로 공원에서 잠이 든 그녀를 미국 신문기자 조(그레고리 펙)이 발견하고 자기 하숙집에서 하룻밤 재워 준다. 다음날 신문사에 출근해 공주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된 조는 하숙집 그녀가 공주임을 알게 되고 특종기사를 만들고자 로마 관광을 시켜준다. 두 사람 사이에 싹트는 미묘한 애정전선에 나도 모르게 심쿵!

오드리 햅번이 젤라또를 먹던 스페인 광장(요즘은 젤라또 금지!), 거짓말쟁이는 손이 잘린다는 속설을 전하며 그레고리 펙이 앤을 놀리던 진실의 입, 로마의 상징과도 같은 트레비 분수, 앤과 그레고리 펙이 난장을 벌였던 테베레강의 유람선…. 흑백필름으로 보는 로마의 전경이 이국의 풍취를 더한다. 영화가 촬영된 지 65년이 됐지만, 로마는 달라진 게 별로 없기에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로마 관광 가이드’의 고전이라 하겠다.

<천사와 악마>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천사와 악마>(2009)

톰 행크스가 일루미나티의 비밀을 파헤치며 위험한 반물질 폭탄으로부터 로마를 구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다빈치 코드>의 팬들에겐 익숙할 터다.

세계 최대의 과학연구소인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우주 탄생을 재현하는 빅뱅 실험이 진행된다. 물리학자 비토리아(아예렛 주어)와 동료 실바노는 빅뱅 실험으로 강력한 에너지원인 반물질 개발에 성공하지만 실바노가 살해 당하고 반물질은 사라진다.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교황청으로부터 의문의 사건과 관련된 암호 해독을 의뢰받는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고대의식인 콘클라베가 집행되기 전, 가장 유력한 4명의 교황 후보가 납치된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바티칸 대성당에서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3주동안 샅샅이 촬영했기에 호기심 충족은 물론 눈호강에도 그만이다. 교황 비밀선출 과정인 콘클라베, 스위스 근위대의 근무 장면 등 희귀한 볼거리가 넘친다. 포폴라 광장의 쌍둥이 성당, 나보나 광장의 분수, 그리고 산타젤로성까지 <로마의 휴일>이 로마 겉핥기라면, <천사와 악마>는 톺아보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온리 유>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온리 유>(2015)

사랑은 저절로 오는 운명인 걸까? 수의사인 팡유안(탕웨이)은 치과의사인 시에웨이(시예동승)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친구들 모두가 부러워하지만, 평소 점 보는 걸 즐기던 팡유안은 “당신은 송쿤밍이란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던 점쟁이의 말 때문에 찜찜하다. 그런 팡유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시에웨이의 고교 통창인 송쿤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는 “이탈리아 출장 때문에 동창회 참석이 어렵다고 전해달라”고 한다. 팡유안은 상대가 정말 운명의 남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젠 한국인 같은 느낌마저 드는 ‘탕새댁’ 탕웨이의 빛나는 외모와 밀라노, 루카, 피렌체의 절경이 내뿜는 시너지란! 밀라노 두오모, 피렌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옥상 레스토랑 등이 찬사를 자아낸다. 한국인에겐 익숙치 않지만, ‘루카’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작지만 아름다운 옛도시로 음악가 푸치니의 고향이다. 특히 세인트 미켈레 성당에 주목하자. 1074년 착공해 무려 300년 넘는 공사 끝에 완공된 이 성당은 영화 속에서 탕웨이의 운명적 사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삽입곡인 어 파인 프렌지(A Fine Frenzy)의 ‘Allmost lover’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돈다. 시간이 난다면 리메이크작인 이 영화의 원작인 마리사 토메이·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동명 영화(1994)와 비교하며 보자. 원작은 베니스·로마·포지타노를 배경으로 한다.

<퍼펙트 겟어웨이>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윤필립 평론가: 평범한 여행 영화에 지쳤다고? 이런 영화들은 어떨까? 장르에 따라 아름다움이 공포로 변하는 짜릿함을 주기도 하고, 가지 못한 고향에 간 듯 시골향수를 자아내며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는 영화 세 편을 꼽았다.

<퍼펙트 겟어웨이>(2009)

<친구>(2001)의 명대사 속 그곳, 하와이! 이층양옥집과 해외여행이 성공한 중산층을 의미하던 시절, 하와이는 돈을 벌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야 할 지상낙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지런히 여비를 모은다 해도 늘 연휴는 짧고 하와이는 멀다. 그래서 추천하는 영화, <퍼펙트 겟어웨이>(2009).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온 시드니(밀라 요보비치)와 클리프(스티브 잔) 그리고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커플들. 이 낯선 동행은 점차 위태로운 모험이 되고 결국 생존게임으로 변모한다. 스릴러 장르답게 불신에 기반한 의심은 긴장감을 증폭시키며,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와이 구석구석의 절경은 극적 개연성의 한계마저 불식한다. 집을 벗어나긴 싫으나 명절답게 짜릿한 일상 탈출을 맛보고 싶다면 <퍼펙트 겟어웨이>로 “니가 가라, 하와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2015)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무질서가 곧 질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위적인 질서를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무질서 속에서 안도감과 해방감을 맛보기도 하는 것 같다. 이것은 여행자들을 인도 폐인으로 만드는 인도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도여행을 한 번쯤 꿈꾸었을 그러나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을 당신에게 명절용 방구석 여행 영화로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를 추천한다. 지구에 사는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의 풍경들이 우주 그것도 지구보다 더욱 문명화된 어느 별에서 온 피케이(아미르 칸)의 시선에서는 지식의 지평을 넓힐 만큼 낯설고 의문투성이로 비친다. 외계에서 온 순수 청년의 좌충우돌 지구 생활 적응기는 그 자체로 희극적이나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만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발리우드의 본고장 뭄바이는 기본에 벨기에의 명소와 심지어 지구 밖 우주는 덤이다.

<리틀 포레스트>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리틀 포레스트>(2018)

명절 연휴 동안 일상을 벗어나고자 여기저기를 떠돌지만 결국 모두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있다. 돌이켜 보면 그곳은 나의 시간과 부모와 형제자매의 시간 그리고 절친한 벗들의 시간이 논밭의 오곡백과처럼 나서 자라고 지기를 반복하는 토양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올 추석에도 고향을 그리워할 우리 모두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이번 여행의 종착지로 적격이다. 여러 이유로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 그리고 혜원의 고향 친구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 혜원을 중심으로 이 셋이 풀어가는 자급자족 귀농 프로젝트를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만 만족한다면 우리 삶은 그저 내 걸음 폭에 맞춰 느린 걸음으로 가도 상관없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처럼 <리틀 포레스트>는 남보다 느리게 가는 삶이 결코 뒤쳐진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알려주며 위안을 주는 마치 ‘엄마’ 같은 영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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