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10 09:13 수정 : 2019.10.10 10:08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59)쉬리
감독 강제규(1999년)

비밀정보기관 특수요원인 유중원(한석규)은 약혼녀 명현(김윤진)에게 신분을 숨긴 채 지내던 중 명현 역시 정체를 감춰왔음을 알게 된다.
한국영화 100년사에서 영화 한편이 산업 전체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할 때, <쉬리>는 독보적이다.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영화가 극심한 침체에 빠졌을 때, 느닷없이 나타난 <쉬리>는 설을 앞두고 개봉해 추석 무렵까지 극장가에서 롱런하며 전국 6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 파장은 대단했다. “파이를 늘려야 한다”는 강제규 감독의 말은 충무로의 금과옥조가 되었고, 영화판에 조금씩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21세기에 시작되었다. 해외 시장이 개척됐고 할리우드 스타일의 장르가 시도되었으며 ‘웰메이드 영화’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의 시작에 <쉬리>가 있었고,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한국의 상업영화는 20년 전 <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정보요원 유중원(한석규)은 자신에게 정보를 전해주려던 무기밀매상이 거리에서 암살당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총격전을 벌인다.
이러한 산업적 파워는 <쉬리>라는 콘텐츠가 지닌 폭발력에서 왔다. 그 전략은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정교한 결합이었다. <쉬리>는 1980년대까지 존재했던 반공영화의 세계관을 잇는 것 같으면서 폐기하고 새롭게 해석했다.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쉬리>는 적이자 연인인 이방희/이명현(김윤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단순하게 고정되었던 북한에 대한 이미지에 균열을 가한다. 이 설정은 멜로 코드와 결합해 신파적 감정을 만들어내고, 한편으론 ‘정체를 숨긴 저격수’라는 스릴러 요소와 맞닿으며, 동시에 한국에선 낯설었던 총기 액션의 스펙터클로 이어진다. 이러한 숨 가쁜 전개는 당시 한국영화에선 낯설었던 장르 혼용이었다.

<쉬리>는 ‘분단’ 상황을 엔터테인먼트와 완벽하게 결합시킨 첫 사례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전이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북한을 명백한 주적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이후 한국영화는 분단을 이야기할 때 더 이상 경직되지 않아도 되었고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쉬리>는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영화였고, 한국영화에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끌어들인 산업적 이정표였다.

김형석/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