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5 23:15
수정 : 2019.08.16 01:57
[짬] 다큐멘터리 영화 전국 개봉 정다운 감독
|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의 전국 개봉을 이뤄낸 ‘삼총사’, 김종신 프로듀서·유이화 이타미준건축연구소 대표, 정다운 감독이 지난 1일 CGV청담 씨네시티에서 1차 특별상영회를 마치고 함께 했다. 사진 김경애 기자
|
“이타미 준 선생님의 건축 작품을 처음 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2006년 영국에서 남편은 영화, 저는 건축영상 유학을 마치고 빈손으로 돌아와 막막할 때였어요. 제주도 시댁에 귀국 인사를 갔더니 시아버지께서 꼭 봐야 할 곳이라며 비오토피아로 이끌었어요. 그렇게 수·풍·석 미술관을 보고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위로를 받았어요. 작가를 뒤늦게 찾아보고 재일동포여서 더 호기심을 느꼈죠. 2011년 별세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아쉬워 다큐멘터리로 기리고 싶었어요. 그해 12월 프리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기획을 시작했으니 개봉까지 꼬박 8년이 걸린 셈이네요.”
세계적인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삶과 작품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만든 정다운(43) 감독은 “마치 예정된 것처럼 8년간 숙성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10년 10월 이타미 준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기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5384.html)를 썼던 인연으로, 다큐 기획단계부터 촬영 현장까지 여러 차례 만났던 그였다. 하지만 독립 다큐로는 드물게 15일 전국 동시 개봉을 하게 되기까지, 최근 특별시사회에서 다시 들은 작품 제작기는 새삼 흥미로웠다.
“2006년 제주 비오토피아 큰 감동”
재일동포 유동룡 건축세계에 끌려
2011년 별세 소식에 ‘헌정영상’ 기획
펀딩 무산 등 제작비 없어 중단 고비도
“가족·지인들 예정해놓은듯 지원”
8년만에 완성 ‘이타미 준의 바다’ 15일 개봉
|
제작 기간이 8년이나 걸린 사이 태어나 자란 정다운 감독·김종신 피디 부부의 아들 ‘두율’(왼쪽)군과 이타미 준과 닮은 체형의 박길룡(오른쪽) 국민대 명예교수가 대역으로 다큐 <이타미 준의 바다>에 등장하게 됐다. 사진 제작사 기린그림 제공
|
“정 감독을 처음 만난 순간 분명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정 덩어리’로 보였거든요. 그래서 바로 영화 제작을 승낙했지요. ”
시작은 이처럼 순조로웠다. 이타미 준의 맏딸이자 명실상부한 후계자인 유이화(45) 아이티엠(ITM)건축연구소 대표와 보자마자 의기투합을 한 덕분이었다. “솔직히 그날부터 지금까지 ‘유 대표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어요.” 정 감독은 유 대표를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소개했다. 부친의 꿈이었던 제주도 전시관 건립을 위해 이타미준재단을 만든 유 대장은 도쿄 하네기와 서울 남태령 사무실에 남겨놓은 100여점의 설계 작품을 비롯해 모든 자료를 제공했고 심지어는 고품질의 촬영 카메라도 선물해줬다.
2012년 건축전문 영상제작사 ‘기린그림’을 차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남편 김종신 감독도 자신의 작품을 접어두고 기꺼이 프로듀서를 맡아 동참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한 재일동포 재단의 펀딩이 무산되면서 제작은 중단됐고 그는 한동안 아들 육아에 전념했다.
다시 추진하게 된 두번째 계기는 2014년 이타미 준 3주기 때였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아카이브’ 두번째로 <이타미 준-바람의 조형>(큐레이터 정다영) 전시를 했다. 이 전시에서 함께 소개할 ‘7분짜리 영상’ 의뢰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타미 준의 건축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던 두 사람은 미술관 예산에 자체 제작비를 더해 영상을 만들었다. ‘건축 15분·인물 15분’ 30분짜리 첫번째 미니 다큐였다.
세번째 계기는 2016년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 선정이었다. “무려 3수만이어서 더 기뻤어요. 그동안 제작비 부담 때문에 못했던 도쿄 등 일본 현지 촬영을 할 수 있게 됐거든요.”
|
이타미 준이 2011년 별세할 때까지 살았고, 지금도 부인이 살고 있는 도쿄의 자택 앞을 맏딸 유이화 이타미준건축연구소 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20여평 규모의 작은 단층주택이어서 지붕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큐 <이타미 준의 바다>의 엔딩 부분 장면이다. 사진 기린그림 제공
|
‘3수’의 기다림은 제작비만이 아니라 기대 이상의 보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자란 아들(두율)은 5살 때부터 ‘모델’로 등장해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게 됐다. 이타미 준이 생전에 인연을 맺은 한·일의 수많은 지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다정했던 고인의 인간미를 확인했고 더불어 이야기도 풍성해졌다. 건축가인 박길룡 국민대 명예교수를 만나서는 이타미 준과 너무나 비슷한 걸음걸이와 뒷모습을 발견해 ‘대역’으로 전격 캐스팅했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이타미 준의 한창 때 활동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동영상을 찾아낸 거였어요. 1996년 대구 프로젝트 때 참여하며 의형제처럼 깊이 교유했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재봉씨가 경주 여행을 함께 하면서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찍어준 필름을 제공해줬어요. 있는 줄도 몰랐던 ‘보물 같은 영상’이었죠.”
|
1996년 한국과 일본 지인들과 경주 여행을 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이타미 준. 동행했던 대구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재봉씨가 소장해오다 제작팀에 제공했다. 사진 기린그림 제공
|
정 감독은 “마치 영화를 대비한 듯, 이타미 준이 일생 동안 뿌려놓은 인연과 자료들을 연결하니까 ‘1시간12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짜여졌다”고 했다.
촬영을 마친 후 2017년 ‘제9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시간의 건축>이란 제목으로 먼저 선보였다. 영화와는 다른 편집본이었다. 그리고 지난 5월 8년간 준비한 <이타미 준의 바다>로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도전했다. 여기서 ‘이타미 준의 예술혼을 영상으로 복원해 낸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시지브이(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받으며 마침내 일반 관객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감독으로서 전국 개봉까지 했으니 당연히 흥행을 바라지요. 개인적으로는 지난 8년간 ‘이타미 준’의 존재론적 고독과 따뜻한 인간미를 통해 깨달은 삶의 아름다움을 관객들도 공감하게 된다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