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3 11:46
수정 : 2019.08.13 20:15
진선규·서예지 주연 ‘암전’
배성우·성동일 주연 ‘변신’
두 작품 잇따라 스크린 걸려
올해 한국영화 라인업엔 유독 호러물이 눈에 띄었다. 최근 몇 년 <검은 사제들>, <곡성>, <곤지암> 등 공포영화가 선전한 가운데, 2019년이 침체를 겪던 한국 호러 장르가 되살아 나는 분기점이 될지 관심이 쏠린 터다. 올초 <사바하>로 포문을 연 한국 호러영화는 <왓칭>, <0.0㎒>를 거쳐 여름 텐트폴 <사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사바하>가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을 제외하고 공포물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147억 대작 <사자>는 누적관객수가 153만명으로 손익분기점(350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늦여름을 공략하는 두 편의 공포영화가 잇달아 스크린에 걸린다. 진선규·서예지 주연의 <암전>(15일 개봉)과 배성우·성동일 주연의 <변신>(21일 개봉)이 그 주인공이다. 두 작품이 한국 공포영화의 명맥을 되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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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전>의 한 장면.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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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영화 구성 독특한 <암전>
대세가 된 배우 진선규의 호러 데뷔작으로 화제가 된 <암전>은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식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8년째 공포영화를 찍기 위해 준비만 하던 신인 감독 미정(서예지)은 한 후배로부터 ‘귀신이 찍은 영화’라는 소문과 함께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호기심이 동해 영화에 대한 단서를 끈질기게 추적하던 미정은 문제의 영화가 <암전>이라는 작품이며 , 이를 만든 감독이 재현(진선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듯한 상태인 재현은 “<암전>에 대해서는 싹 다 잊으라”고 충고하고 “교회라도 나가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친 미정은 재현의 충고를 무시한 채 결국 영화의 원본을 손에 넣고, 이후 미정은 극단적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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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전>의 한 장면.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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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정이 영화에 대한 괴소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담아낸다. 특히 재현의 뒤를 미행한 미정이 재현의 폐가에서 겪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숨소리마저 잦아들 만큼 스릴감이 넘친다. 재현이 만든 <암전>의 원본 필름과 미정의 현실 상황이 교차하고, 하나로 합쳐지는 ‘영화 속 영화’구성은 독특하고 참신하다. 소재가 영화다 보니 극장 의자에 앉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시너지 효과’도 꽤 훌륭하다.
하지만, 초반부에 심장을 옥죄던 긴장감은 뒤로 갈수록 점점 떨어진다. ‘영화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라는 중심 키워드에 집착하다 보니 꽤 리듬감 넘치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전개는 느려지고 힘이 빠진다. 특히 결말로 치달을수록 끓어올라야 할 스릴은 일반적인 공포영화의 패턴을 답습하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이 작품은 배우 서예지에 대한 재발견이 가장 큰 성과다. 민낯에 다크 서클, 겁에 질린 눈동자와 표정만으로도 스크린을 꽉 채우는 느낌이다. 장르영화에 딱 맞는 ‘올해의 호러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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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신>의 한 장면.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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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이 낯섦으로 변할 때의 공포 <변신>
가장 익숙한 존재가 갑자기 낯설어질 때의 공포감. 영화 <변신>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이 알 수 없는 ‘낯선 존재’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섬뜩한 이야기를 다룬다.
천주교 사제인 동생 중수(배성우)가 구마 의식을 하던 중 한 소녀가 죽게 되면서 악의적 소문에 시달리게 된 강구(성동일)네 가족은 부랴부랴 이사를 하게 된다. 이사 첫날부터 ‘기괴한 소음’을 내는 이웃집 때문에 고통 받는 강구네 가족. 경찰까지 출동해 이웃집에 항의하고 난 후부터, 갑자기 가족들 사이에 괴이하고 섬뜩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악마가 가족 안에 숨어든 것. 아빠가 진짜 아빠인지, 엄마가 진짜 엄마인지, 동생이 진짜 동생인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커져간다. 무차별적 공포를 해결하고자 첫째 딸 선우(김혜준)는 구마 사제인 삼촌 중수를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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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신>의 한 장면.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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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은 절대 악과 싸우는 기존의 엑소시즘(혹은 오컬트) 영화와 달리 ‘가족’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옮겨 다니는 악마와의 대결을 그린다. 믿음직했던 아빠가 망치를 들고 아이들을 공격하고, 다정했던 엄마가 아들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어린 남동생이 식칼을 드는 단순한 장면은 온갖 시지(CG)를 동원해 구현한 악령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크나큰 공포를 안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의지해야 할 ‘가족’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 그 안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감은 <변신>의 가장 큰 무기다.
이를 끌어가는 것은 성동일·장영남·배성우 등 관록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들이 내뿜는 ‘평범한 공포’는 동물의 사체와 구더기가 들끓는 유혈 낭자한 이웃집 풍경을 압도한다. 걸신들린 듯 밥을 입에 욱여넣는 장영남의 행동, 딸의 이불을 끌어내리며 전신을 쓱 훑는 소름 끼치는 성동일의 눈빛은 관객의 숨통을 조이고 사지 경직의 압도적 공포를 끌어낸다. 다만, 후반부 가족들에 대한 ‘구마 의식’과 함께 이어지는 ‘자기희생’의 신파 드리마는 오컬트 장르의 뻔한 클리셰로 느껴져 못내 아쉽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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