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7 14:34
수정 : 2019.08.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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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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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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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 ‘황해철’ 역으로 통쾌한 액션 선봬
‘1987’ ‘택시운전사’ ‘말모이’ 등에 출연하며
‘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 별명 얻기도
“역사는 이름없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의 총합”
<1987>(2017) <택시운전사>(2017) <말모이>(2019) 그리고 <봉오동 전투>까지.
그 자신조차 영화를 찍으며 근현대사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국사책 속 단 석 줄짜리 역사, 이름이 아닌 숫자로 기록된 역사, 모두의 뇌리에 희미하게 잊힌 역사, 때로는 잊기를 강요받은 역사…. 누군가는 이런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그에게 ‘국찢남’(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재밌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인 선택은 아니라며 “엄청난 사명감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때론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도 해야겠다는 작은 책임감 정도는 생기더라”고 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개봉을 앞두고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유해진(49)은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허허허”하고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긴장감 대신 특유의 편안함이 감돌았다. “올해가 임시정부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이라 의미가 깊잖아요? 무엇보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통쾌하다는 점에 확 끌렸어요. 관객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지 않을까요?”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중국 만주 봉오동 지역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대승을 거둔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홍범도 장군 등 널리 이름이 알려진 정규 독립군이 아닌, 목숨을 내놓고 일본군을 유인하는 게릴라 작전을 펼쳤던 이름없는 독립군들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유해진은 영화에서 항일 대도를 휘두르며 무리를 이끄는 ‘칼잡이’ 황해철 역을 맡아 총을 들고 달려드는 일본군의 머리를 가차 없이 숭덩숭덩 베어내는 화끈한 액션신을 선보였다. “제 대역을 정두홍 무술감독이 했어요. 이런 전투신에서는 기교나 화려함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 느껴져야 할 것 같았죠. 두홍이 형이 ‘해진이 대역이면 할게’라고 흔쾌히 허락했다더군요. 저는 꽤 만족스럽던데,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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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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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항일 대도를 휘두르는 것쯤은 고생 축에도 못 낀다. 영화 속 모든 주인공은 시종일관 숨이 턱에 차도록 뛰고 달린다. 하지만 평소 취미인 등산으로 체력을 갈고 닦은 유해진만은 다소 여유로워 보였다나. 함께 출연한 류준열은 그런 유해진을 ‘산신령’이라고 칭했다는 후문이다. “말 그대로 아침 먹고 뛰고, 점심 먹고 뛰고, 저녁 먹고 뛰는 거죠. 삼시 세끼 달리기 편이랄까. 저야 산을 좋아하니까 촬영 중에도 점심 먹고 옆에 있는 산에 또 괜히 한 번 올라가 보곤 했죠. 허허허. 준열이는 젊어서 잘 뛰던데, (소곤소곤) 우진이가 영~ 허허허.”
<무사>(2001) 때 사막 촬영을 하며 이런 고생은 다시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그는 <봉오동 전투> 때문에 그에 버금가는 고생을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무사>는 빠릿빠릿할 때죠. 두홍이 형 액션스쿨에서 쓰러질 때까지 연습했어요. 그땐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 이번엔 ‘남들에게 민폐 끼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액션신 찍다 자꾸 담이 와서 마그네슘까지 챙겨 먹었어요. 허허허.” 그는 인터뷰 중에도 연신 스트레칭 밴드로 몸을 풀었다. “이제 나이가 오십이라…. 허허허.”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반일감정’이 드높은 데다 광복절까지 앞둔 상황이라 여론을 등에 업는 이점도 있을 터다. 특히 영화 속에는 붉은 피로 ‘대한독립 만세’를 쓰는 등 애국심에 직접적으로 불을 지르는 장면도 많다. “좋은 시국이 아니잖아요? 이런 때에 우리 영화만 득을 보겠다는 계산은 좀 이기적이죠. 영화는 영화의 힘으로 가야 해요. 한편에서 ‘국뽕 논란’도 나오는 걸 아는데, 사실 이 영화는 직설화법, 즉 스트레이트로 가는 작품이에요. 후련함을 줘야 할 영화인데 빙빙 돌리면 오히려 어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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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전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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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엇보다 이 영화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 좋다고 했다. <택시운전사> 때도, <1987> 때도 비슷했단다. “역사는 결국 이름없는 보통 사람 이야기의 총합이죠. 평범한 사람들의 힘으로 바꿔나가는 세상, 그걸 위해 지금도 우리 모두 노력하는 것일 테고요.”
유해진은 충무로에서 이미 흥행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최근 몇 년 <베테랑>(1341만) <럭키>(697만), <공조>(781만) <택시운전사>(1219만) <1987>(723만) <완벽한 타인>(530만) <말모이>(286만)까지 모두 흥행작 반열에 올린 터다. 이번에도 천만 클럽 가입이 가능할까? “사람들이 천만에 익숙해져 그런데, 저는 200만~300만이 얼마나 힘든 숫자인지 알아요. 요즘 영화계도 양극화가 심각하잖아요? 사실 200만~300만짜리 중박 영화가 많이 나와야 다양성이 좀 생기는데…. 천만은 하늘의 도움을 포함해 모든 게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숫자죠.”
그의 다음 행보는 200억짜리 에스에프(SF) <승리호>다. “특별히 장르물에 도전하려고 선택한 건 아니지만, 촬영 방식이 색다르니까 재밌긴 하더군요. 한창 촬영 중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쉿! 허허허.” 그다음 작품은 <청산리 전투>냐고 농을 던져봤다. “봉오동의 정신이 어떻게든 쭉 이어지긴 할 텐데…. 원신연 감독이 아직 후속작 이야기는 없던 걸요? 허허허.”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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