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6 07:08
수정 : 2019.08.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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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신(이민자)은 어린 딸과 함께 피란 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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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42)미망인
감독 박남옥(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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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신(이민자)은 어린 딸과 함께 피란 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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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이 <미망인>으로 데뷔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 1955년은 장안의 화제작 <자유부인>(감독 한형모)이 개봉하기 1년 전인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변화를 알리며 반복해서 제작된 <춘향전>(감독 이규환)이 처음으로 상영된 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도래와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과 소망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혼란을 담은 멜로드라마가 여성 관객 공략을 본격화한 즈음이었다.
박남옥 감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된 이 작품은 아이를 둘러업고 스태프들 밥을 직접 해 먹였다, 조명기를 들다가 레디고를 외치며 찍었다, 한복을 입고 녹음실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영화를 완성하고 보니 치맛단이 다 떨어져 나갔더라는 등의 처절한 후일담을 남겼다. 비록 전직 투포환 선수라지만 그는 출산한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제작 현장에 나섰으며, 극작가인 남편 이보라의 시나리오, 친분을 활용한 캐스팅(개인적으로 가까웠던 이민자가 주연을 맡았다), 언니의 제작비 지원(영화사 크레디트가 ‘자매영화사’인 이유다)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이 작품을 찍었다.
<미망인>은 사회적 약자인 미망인들을 도덕적 희생양으로 만드는가 하면 남성들에 의해 깨진 그릇 취급을 받거나 불장난의 대상이 되곤 하던 당시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가장 큰 특징은 무력한 남성들에 비해 여성 캐릭터가 대단히 입체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데서 드러난다. 특히 상처와 모욕을 넘어 노동을 통해 확보한 여성의 주체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여성 등장인물들을 ‘위험한 여성’으로 타자화하면서 계몽과 설교의 대상으로 취급하던 사회 분위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영화는 이민자가 연기하는 미망인을 욕망과 모성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린다. 이는 1950년대 한국 사회에서 ‘보호·규제의 대상, 유혹의 주체로서의 전쟁미망인’이나 ‘처녀도 아니고 유부녀도 아닌 젊은 여성들’의 문제가 전후 사회의 재구성 과정에서 직면한 과제라는 점을 영화가 주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재란/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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