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5 14:50
수정 : 2019.08.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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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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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앨리스 죽이기’ 8일 개봉
5년 전 ‘신은미 종북 콘서트’ 논란 다뤄
‘종북 빨갱이’로 몰린 상황 밀착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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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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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물은 아주 맑고, 그 물로 만든 맥주도 참 맛있더라”고 소감을 밝힌다. 사람들은 앨리스에게 “이상한 나라를 칭찬하는 너는 첩자가 분명하다”고 누명을 씌운다. 영문도 모른 채 앨리스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화형의 위기에 처한다.
마치 한 편의 잔혹 동화 줄거리 같다고? 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불과 5년 전 대한민국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이다. 김상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8일 개봉)는 지난 2014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신은미의 종북 콘서트’에 관한 진실을 추적해 우리 사회에 도사린 ‘레드 컴플렉스’의 실체를 까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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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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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신은미씨는 우연한 기회에 남편과 함께 북한 여행을 하게 된다. 난생 처음 북에 간 신은미씨는 큰 감흥을 받는다. 뿔 달린 무서운 존재인 줄 알았던 북한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이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녘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은 감동 그 자체였다. 신씨는 여행에서 느낀 소소한 감상을 담은 여행기를 출판한다.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이 책은 큰 주목을 받았고, 2013년 문체부가 뽑은 ‘우수문화도서’로 선정되는가 하면 통일부 홍보 영상에도 등장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통일의 아이콘’이 된 신은미씨는 이듬해인 2014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을 지냈던 황선씨와 함께 전국을 돌며 ‘통일 토크 콘서트’를 개최한다. 하지만
<채널A> 등 일부 종편이 신씨의 콘서트에 대해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종북 콘서트’라고 매도하면서 신씨는 ‘종북 빨갱이’로 몰린다. 보수단체는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심지어 한 고등학생은 신씨의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 인화물질 테러까지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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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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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수적인 대구 출신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씨가 어떻게 이데올로기 논쟁의 희생양이 됐는지 밀착 취재한다. 그가 토크 콘서트에서 언급한 “북한 주민이 젊은 지도자 김정은에게 거는 기대가 크더라”는 말은 어느새 “북한 3대 세습 찬양”으로, “대동강 물이 참 맑더라”는 말은 “북한이 지상낙원이다”로 바뀌어 보도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종편의 ‘종북 콘서트’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신씨에겐 더욱더 빨간 덧칠이 가해지고, 결국 그는 2015년 검찰에 의해 강제 출국을 당한다.
영화는 신씨가 토크 콘서트에서 했던 말과 종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교차 편집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마녀사냥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것인지를 밝힌다. “북한에서는 세쌍둥이를 낳으면 헬기로 이송한다”는 신씨의 설명이 탈북 여성들이 출연하는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똑같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임을 알게 되면 헛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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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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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처럼 신씨를 향한 ‘종북몰이’가 비이성적인 ‘레드 콤플렉스’와 ‘종북 포비아’의 산물이며, 이를 부추긴 종편의 마녀사냥 결과임을 꼬집는다. 물론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 한반도 상황은 5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종전 선언, 나아가 평화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앨리스 죽이기’는 언제든 현재 진행형으로, 또 미래 진행형으로 되풀이 될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말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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