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받자마자 체력단련 시작
민폐 아닌 용감한 주인공에 끌려
예쁜 모습보다 보여주고픈 것 많아
서른은 그런 나이인가 봐요”
영화 <엑시트> 주연배우 임윤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예쁨 따윈 개나 줘버려!’
올여름 시장을 겨냥한 재난액션영화 <엑시트>(31일 개봉)에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임윤아(29)는 103분의 러닝타임 내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질끈 묶은 머리에 먼지로 얼룩덜룩해진 얼굴, 쓰레기봉투로 만든 방호복을 입은 윤아는 시종일관 뛰고 달리고 기어오르는 리얼 현실 액션을 소화한다. ‘국민 요정’으로 불렸던 ‘소녀시대’ 윤아는 온데간데없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윤아는 “촬영을 하며 소녀시대 윤아가 아닌 영화 주인공 의주로 보이는 게 목표였는데, 너무 감사하다”며 웃었다. 예쁘다는 칭찬보다 예쁨을 내려놨다는 평가에 기뻐하는 여배우라니.
<엑시트>는 대학교 산악 동아리 출신 선후배 관계인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직장인 의주(윤아)가 테러로 인해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고군분투를 그렸다. 영웅도 없고, 과도한 신파도 없으며, 화려한 시지(CG)도 없지만, 짠한 웃음과 빵 터지는 유쾌함으로 승부를 거는 작품이다.
영화 <엑시트> 주연배우 임윤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대본을 받자마자 바로 운동을 시작해 체력을 길렀어요. 촬영 두세 달 전부터 (조)정석 오빠랑 클라이밍을 배웠고 액션스쿨에 등록해 건물을 타고 오르는 장면도 연습했죠. 막상 촬영에 돌입하니까 줄기차게 달리고 또 달리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몇날 며칠을 달리는 장면만 찍다 보니 근육이 뭉쳐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지경이라 눈물이 터진 적도 있어요.” 10년 넘게 ‘소녀시대’ 활동을 하며 칼군무로 다진 몸이건만, 윤아는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고 했다.
수많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텐데 왜 첫 주연작으로 <엑시트>를 택했을까? “많은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민폐 캐릭터’인 것과 달리 의주가 능동적이고 책임감 강하고 빠른 판단력으로 현명하게 대처하는 인물인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혼란스러운 재난이 닥쳤을 때 냉정을 찾고 수습하려는 의주의 모습은 윤아 자신과 싱크로율도 꽤 높다고 설명했다. “저도 위기상황에선 감정보단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편인 듯해요. 물론 저는 생각만 하는데 의주는 행동으로 실천하죠. 저보다 의주가 더 용감한 것 같긴 하네요.(웃음)”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CJENM) 제공
그간의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에서 과감히 벗어난 윤아는 이번 작품에서 ‘코믹연기’를 선보인다. 용남이 자신을 두고 도망간 줄 알고 “나쁜 ×”라고 욕을 하거나 노약자를 먼저 구조 헬기에 태워 보내고 뒤돌아 울먹이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낸다. “<공조>에서 푼수 민영 역을 맡았을 때부터 코미디 디엔에이(DNA)를 발견했다고들 하던데, 사실 저는 이번 작품에서 웃겨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뒤돌아섰을 때 터져 나오는 눈물은 인간적인 본심이잖아요? 억지로 감정이입 할 필요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인 거죠. 의주는 영웅이 아니라 현실을 사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 대신 촬영 내내 체육복 바지와 쓰레기봉투로 만든 방호복을 입고 연기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벌로 촬영하니 옷에 신경 안 써도 돼 편하던데요? 아, 쓰레기봉투 방호복은 정말 기발하죠? 상하의가 분리되긴 하는데, 연결 테이프를 뜯어야 해서 화장실 가려면 힘들었어요. 가급적 참아야….(웃음)”
‘소녀시대’로 가수 데뷔를 한 뒤 곧바로 드라마 <9회말 2아웃>에 출연하며 연기 겸업을 시작했기에 윤아는 올해로 데뷔 12년 차 ‘중견 배우’다. 하지만 “영화는 <공조>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주연작이기 때문에 신인 영화배우 임윤아일 뿐이다. 영화배우로서는 경험이 부족하지만, 아직 보여드릴 모습이 많이 남았다는 긍정적인 면에 방점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씨제이이엔엠(CJENM) 제공
무대 위에서 그렇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건만,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포스터가 극장에 걸린 것이 그저 신기하고 큰 스크린에 비치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는 윤아. 첫 주연작인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물었다. “손익분기점 350만을 말씀하시는데, 감이 전혀 없어요. 예전에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이 시청률 40%를 넘기고 제 역할인 ‘새벽’이가 큰 사랑을 받았을 때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어요. 몇 작품 더 하고 나니 엄청난 거였구나 실감이 났죠. 영화도 몇 작품 더 해야 제작비 대비 손익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 윤아는 지난해부터 ‘서른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했다. “20대 때는 항상 예뻐야 하고 항상 잘해야 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을 했어요. 이제는 서서히 바뀌는 길목에 선 듯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에 더 마음이 가요. 서른은 그런 나이인가 봐요.” 그렇게 ‘소녀시대’를 지나 ‘배우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윤아는 단단히 여물어 가고 있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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