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2 19:28
수정 : 2019.07.12 19:35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1989년 4월19일 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강간, 폭행 사건이 발생한다. 강간 사건의 피해자는 공원을 조깅하던 젊은 백인 여성이었고, 경찰은 당시 공원에 있던 흑인, 히스패닉계 소년 다섯명을 용의자로 체포한다. 14살에서 16살까지의 소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와서 부모의 입회도 없이 42시간 동안이나 취조당한다. 식사는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폭행까지 당해야 했던 감금 상태에서, 아이들은 ‘잘만 얘기하면 집에 빨리 보내주겠다’는 경찰들의 말에 속아 거짓 진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경찰들의 요구를 들어준 뒤에도 그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지난 5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미니시리즈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When They See Us)는 뉴욕주에서 일어난 가장 유명한 형사 사건 중 하나인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다. 1989년 4월 뉴욕은 연이어 일어난 강간 사건들로 공포에 떨고 있었고, 뉴욕 경찰들은 초조함에 시달렸다.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년들을 잡아 온 경찰들과 담당 검사는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범인으로 몰아갔고, 결국 다섯 소년은 억울하게 구속된다. 일명 ‘센트럴파크 파이브’로 알려진 이들은 뉴욕주 전역의 교도소에서 길게는 14년이나 징역을 살아야 했다.
이 끔찍한 사건의 진실은 2001년 진범의 자백에 의해 알려졌다. 담당 검사와 형사들은 그가 ‘6번째 공범’일 뿐이라며 여전히 ‘센트럴파크 파이브’의 유죄를 주장했지만, 재수사 과정에서 진범에 대한 확실한 물증과 진술 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마침내 누명을 벗은 다섯명은 뉴욕시를 고소했고, 다시 10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거친 뒤에야 물질적인 보상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2014년 연방법원이 배상 판결한 4100만달러는 뉴욕주 사상 최대 보상금 기록으로 남아 있다.
마틴 루서 킹 목사 전기영화 <셀마>의 에이바 듀버네이 감독은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에서도 실제 사건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치밀하게 그려낸다. 검사와 경찰의 사건 조작으로 출발한 이야기는, 재판 과정에서 소년들을 오히려 인종증오 범죄자로 몰아가는 선정적인 언론과 여론의 문제점을 비추고, 출소 뒤 사회로 복귀한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더 가혹한 편견을 조명한다. ‘센트럴파크 파이브’는 다행히도 누명을 벗고 보상을 받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그들을 향한 증오를 선동하며 사형제를 지지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던 대표적 인사 도널드 트럼프는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다. 그런가 하면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셀마>를 작품상 후보에 올려놓고도 흑인인 듀버네이 감독과 배우들은 감독상, 연기상 후보에조차 올리지 않았다. 감독이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을 다시 복기한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