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0 07:31
수정 : 2019.07.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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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에서 소녀(이정현)는 엄마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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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8)꽃잎
감독 장선우(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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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에서 소녀(이정현)는 엄마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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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개봉한 장선우의 <꽃잎>은 1980년 ‘광주’를 다룬 첫번째 주류 장편 극영화였다.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영화화한 장선우는 그날의 광주를 현재형의 악몽으로 다룬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 문민정부 때이긴 하나 검열제도가 엄연히 존재했던 시대에 광주를 투명한 리얼리즘이 아닌 피해자의 기억에 투사된 악몽으로,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실어증을 뚫고 그 기억을 말하려는 순간 광기에 휩싸이는 고통으로 그려낸 이 영화의 서사는 상당수 관객에게 불편함과 충격을 안겼다.
주인공 소녀(이정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화는 간헐적으로 파편화된 이미지로 알려준다. 시도 때도 없이 광주의 기억은 소녀의 의식을 습격하고 소녀는 그때마다 자지러진다. 막노동을 하는 장씨(문성근)는 자신을 쫓아와 함께 기거하는 이 소녀를 구박하며 폭행한다. 한편으로 소녀의 오빠와 친구들이 소녀의 행방을 찾는 가운데 소녀를 봤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화면에 펼쳐진다. 서사는 조각나 있으며 이는 조각난 깨진 거울과 같은 소녀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흐름으로 조금씩 퍼즐처럼 맞춰진다. 영화 후반부에 다큐멘터리처럼 재현되는 그날의 기억, 시위대에 합류한 어머니를 따라나섰다가 군대의 학살을 경험하고 거리에 쓰러져 숨진 뒤에도 딸의 손을 놓지 않는 어머니의 슬픈 눈을 잊지 못하는 소녀의 트라우마가 온전히 재현될 때도 화면은 서둘러 현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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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트라우마를 겪기 전, 소녀(이정현)는 손님들이 집에 놀러오는 게 그저 좋은 해맑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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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친구들은 ‘광주’ 이후 홀로 남은 소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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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는 <꽃잎>을 ‘투명한’ 리얼리즘으로 다루는 데 관심이 없다. 이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그날을 재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3만 광주시민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가해자의 실체를 밝히고 역사의 과오를 청산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이 영화에 만족하지 않았다. 선과 악, 우리 편과 저쪽 편의 자리를 선명히 가르고 악의 세력에 도덕적 단죄를 가하는 판관의 자리가 아닌 곳에 장선우 감독은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부분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주긴 하지만 끝내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영원히 그날의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 자리에 관객을 호출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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