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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9 09:49 수정 : 2019.07.10 18:22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사는 불법체류자 백호빈(안성기)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영주권자 제인(장미희)을 만나 위장결혼을 한다.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7)깊고 푸른 밤
감독 배창호(1985년)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사는 불법체류자 백호빈(안성기)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영주권자 제인(장미희)을 만나 위장결혼을 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밤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은 주말 아침에 보이는 토사물만큼이나 추하고 아득하다. 알록달록, 번쩍번쩍 말초(末梢)를 짓눌러대지만 결국엔 속된 욕망만 부추기는 이정표 같은 것이거나, 취기에 품어보는 환상,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배창호 감독의 1985년작 <깊고 푸른 밤>은 그러한 신기루 같은 공간 엘에이, 정확히 말하면 ‘아메리카’를 향한 ‘드림’의 이면을 그린다.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는 백호빈(안성기)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제인(장미희)과 위장결혼을 한다. 그는 한국에 두고 온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이지만 돈 많은 여자를 유혹해 때리고 돈을 훔쳐 달아나는 파렴치한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위장결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제인은 동아줄 같은 존재다. 호빈은 그녀를 유혹하고 적당히 호의도 베풀어준다. 결국 호빈이 영주권을 받게 되고 제인이 그에게 빠져들었을 때 호빈은 그녀를 제거하려 한다. 제인은 사랑을 구걸하지만 호빈은 거절하고 새 삶을 기대했던 제인은 구원받지 못한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총으로 호빈을 죽이고 자살한다.

‘아메리칸드림’으로 표상되는 시대의 우울과 절망을 다룬 <깊고 푸른 밤>은 모든 장면을 미국 현지에서 촬영해 화제를 모았다.
현실로 잉태되려는 호빈의 ‘아메리칸드림’은 상흔뿐인 제인의 ‘아메리칸드림’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다. <깊고 푸른 밤> 속 미국은 1970~80년대 미국 이민에 열광했던 한국인들의 판타지를 철저히 배신한다. 그것은 ‘억압’에 질식해가던 세대의 허망하고도 불행한 상상이자 또 한편으론 실제 미국 사회에서 또 다른 종류의 절망들과 마주해야 했던 당시 이민 2세대들의 고난을 역설하기도 한다.

영화는 두가지 다소 불균질적인 영화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되었다. 하나는, ‘100% 미국 올로케’로 실현된 관객 60만명 동원의 대흥행 영화, 또 하나는 ‘비판’과 ‘우울’의 키워드가 전멸한 1980년대 한국영화에서 그것들로 충만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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