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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8 09:10 수정 : 2019.07.10 18:23

서양의학의 보급으로 전통 약방이 몰락하자 김약국집 가족들은 갖가지 불행을 겪는다. 어머니 한실댁(황정순)의 죽음에 이어 실성한 셋째 딸 용란(최지희)이 물에 빠져 죽으면서 비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6)김약국의 딸들
감독 유현목(1963년)

서양의학의 보급으로 전통 약방이 몰락하자 김약국집 가족들은 갖가지 불행을 겪는다. 어머니 한실댁(황정순)의 죽음에 이어 실성한 셋째 딸 용란(최지희)이 물에 빠져 죽으면서 비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김약국의 딸들>은 박경리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통영의 아름다운 풍경과 유현목 감독의 빼어난 연출 그리고 유려한 촬영과 훌륭한 연기가 어우러진 수작이다. 다섯명의 딸을 네명으로 설정한 점, 몇몇 인물의 운명 그리고 마지막 장면 등이 원작과 다르다. 유교를 신봉하는 아버지 김성수(김동원), 무속에 매달리는 어머니 한실댁(황정순), 돈에만 관심 있는 첫째 용숙(이민자), 근대 교육을 받은 둘째 용빈(엄앵란),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셋째 용란(최지희), 기독교에 매몰된 넷째 용옥(강미애). 이들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진입하던 일제강점기의 한국 사회에서 각각의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다.

김성수가 신약의 보급에 밀려 전통 약국을 접으면서, 김약국가의 몰락은 시작된다. 비상 먹고 죽은 귀신 때문이라고 치부하지만, 김성수가 시대의 변화와 근대적인 가치를 수용하지 못한 탓이 크다. 김성수가 무기력하게 집안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을 때, 한실댁은 어떻게 해서라도 가족의 비극을 막아보려고 동분서주한다.

1980년대까지의 한국영화는 흔히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을 무속과 기독교, 샤머니즘과 과학 사이의 갈등으로 표현했다. 유현목 감독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모태신앙 기독교인이었지만, 샤머니즘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무속을 믿는 한실댁은 셋째 사위의 손에 비참하게 살해되고 성적 욕망을 따라가던 용란은 죽게 되는 반면, 기독교를 믿는 용옥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극복하게 된다.

원작에서 김성수는 죽고 용빈은 통영을 떠나간다. 반면 영화는 김성수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가운데, 근대적 가치를 대변하는 용빈이 독립투사 강극과 함께 비극을 딛고 고향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러한 각색을 통해, 아버지가 실패하기는 했지만 전근대의 토대 위에 근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아울러 실존주의에 심취했던 유현목 감독은 배 안에 차오르는 물을 끊임없이 퍼내는 노파의 모습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김경욱/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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