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8 19:25
수정 : 2019.06.28 19:3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악몽의 수요일’
웨일스의 변호사 페이스 하우얼스(이브 마일스)의 삶은 완벽했다. 규모는 작아도 기반은 단단한 회사, 동료 변호사이자 다정한 남편, 귀여운 세 아이, 일과 가정 모두 남부러울 것 없었다. 평탄했던 페이스의 삶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뒤바뀐 것은 어느 수요일 아침, 평소처럼 출근했던 남편 에번(브래들리 프리가드)과 연락이 끊기고 나서부터였다. 온 동네가 서로의 사정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작은 마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에번,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걱정 속에 잠 못 이루던 페이스는 에번의 옷장 한구석에서 가발과 위조 신분증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은 오히려 페이스를 의심한다.
2017년 방영된 영국 드라마 <악몽의 수요일>(Keeping Faith)은 남편의 실종에 얽힌 비밀을 추적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시신 한 구 등장하지 않는 스릴러지만, 안온한 일상에 찾아온 급작스러운 위기와 그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려 더 서늘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는, 원제와 주인공의 이름 페이스(Faith, 믿음)에서 드러나듯, ‘믿음’에 기반한 평온한 세계를 제시하고 그것을 산산이 깨뜨리는 질문을 던지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남자’(faithful man)라 칭찬했던 남편에 대해 페이스는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
초반의 이야기는 에번의 실종을 대하는 페이스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에 남편을 걱정하던 그의 마음은, 곧 외도에 대한 의심으로 뒤바뀌고, 그가 범죄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포착되자 다시 슬픔과 우려로 변한다. 이러한 전개는 페이스가 에번 실종 사건의 피의자로 몰리면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페이스 모르게 사망보험금을 올린 에번 때문에 경찰이 페이스를 의심하자, 부부가 평소에 각방을 썼다는 이웃의 증언이 나온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페이스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시어머니는 페이스가 변호를 핑계로 전과자들과 가깝게 지낸다며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시아버지는 페이스와 그녀를 돕는 스티브 발디니(마크 루이스 존스)의 사이를 수상하게 여긴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가정에서 남편이 빠지자마자, 페이스의 ‘아내와 엄마의 자격’은 한순간에 흔들린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는 가족, 결혼, 사랑, 도덕, 법과 제도 등 보편적이라고 여겼던 세계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을 한다. 믿고 의지했던 가족은 페이스를 의심하고 남들이 모두 범죄자라며 손가락질했던 스티브가 그녀의 곁을 지킨다. 페이스가 신뢰했던 법이 오히려 그녀를 공격한다. 아무도 변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페이스는 자신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사라진 남편의 흔적을 뒤쫓던 추적 스릴러는 어느새 기성 세계에 대한 한 여성의 인식 확장의 여정으로 나아간다. 웨일스 드라마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로 호평받는 이 시리즈는 올 하반기 시즌2 글로벌 방영을 앞두고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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