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6 08:25
수정 : 2019.11.05 16:54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0)고래사냥
감독 배창호(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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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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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은 영화 <고래사냥>을 통해 정치적으로 우울했던 1980년대의 저항적 시대상을 은유적이면서 코믹하게 표현했다.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화한 <고래사냥>은 학교에 염증을 느낀 소심한 철학과 대학생 병태(김수철)와 본래 운동권 출신이나 권력의 폭압에 좌절해 자유로운 ‘거지 도사’로 살아가는 민우(안성기), 그리고 홍등가의 폭력 때문에 실어증을 앓게 된 춘자(이미숙)를 통해 당시 젊은이들의 좌절과 방황을 그려냈다. 관객들은 시대를 신랄하게 풍자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영화에 매료됐고 장면마다 녹아 있는 시대의 가슴 아픈 모습에 공감했다.
영화는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희망의 표지이기도 했다. 가까스로 박정희 정권이 스러진 뒤 또다시 들어선 신군부에 좌절한 젊은이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병태와 민우가 춘자를 고향에 데려다주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 동해 바다는 이들에게 해방의 장소를 의미했다. 험난한 길 저 어딘가엔 작은 희망의 빛이 깜박이고 있음을 은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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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청년 병태(김수철)는 돈 한푼 없지만 거침없고 대담한 민우(안성기)에게 끌려 그를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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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은 침체기에 있었던 한국영화 시장에 다시 돌파구를 마련하는 구실도 했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영화 검열 정책으로 영화 제작이 자유롭지 못했고, 관객 대부분은 외국 영화로 쏠렸다. 1984년 개봉한 <고래사냥>은 서울 관객 43만명을 동원하며 열풍을 일으켰고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한때 ‘방화’를 외면했던 관객들은 <고래사냥>을 통해 다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영화 제작방식도 새로웠다. 기존에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하지 않고 오디션을 통해 당시 신인 배우인 이미숙과 가수 김수철을 캐스팅했다. 로드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주류 상업영화와는 다른 예술영화로서의 만듦새를 갖추면서도 한국 사회와 역사를 진지한 시각으로 성찰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시대를 아우르는 공감과 울림을 주면서 한국영화사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경미/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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