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5 16:11
수정 : 2019.06.25 19:52
[‘사탄의 인형’ ‘애나벨 집으로’ 개봉]
더욱 잔인하게 행동하는 ‘AI탑재’ 처키
공포 유발 물건에 둘러싸인 ‘무표정’ 애나벨
꼼짝달싹할 수 없는 극강의 공포 자아내
그들이 돌아왔다.
여름의 문턱,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공포의 기억’을 안겼던 인형 공포 영화가 다시 관객을 찾는다. “내가 아직도 인형으로 보이니?”라고 속삭이며 뒷덜미에 한기를 쏟아붓는 ‘살인 인형’.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인형을 보고 공포를 느낄까? 전문가들은 1970년 일본의 로봇학자인 모리 마사히로가 제시한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가장 설득력 있는 정답으로 내놓는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은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김봉석 평론가는 “인형은 인간을 본 떠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과 닮았지만, 실제로는 인간성이나 감정 등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특징이 결여된 존재이기에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며 “어린아이들이 피에로 인형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반응이나 부두교에서 인형에 사람의 혼을 실어 저주를 퍼붓는 주술을 펼치는 것 등이 다 비슷한 사례들”이라고 짚는다.
31년 만에 오리지널 작품을 리부트한 <사탄의 인형>(상영 중)과 ‘컨저링 유니버스’의 신화를 쓴 제임스 완이 제작한 <애나벨 집으로>(26일 개봉)가 올여름 우리를 또다시 ‘불쾌한 골짜기’로 몰아넣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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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주)더 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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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탑재하고 돌아온 ‘처키’
만국의 아이들을 공포로 대동단결하게 했던 ‘처키’는 1988년 오리지널 시리즈 1편을 계승한 <사탄의 인형>으로 돌아왔다. 사악한 표정으로 식칼을 들었던 처키에 대한 잔상으로 ‘애착 인형’마저 내던지게 했다는 ‘전설의 공포’를 되살리겠다는 각오다.
줄거리는 1988년작과 유사하다. 엄마와 단둘이 이사를 온 ‘앤디’는 친구를 사귀는데 애를 먹는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캐런은 어느 날 앤디가 평소 갖고 싶어하던 인형인 ‘버디’가 반품 처리되자, 이를 앤디의 생일선물로 집에 가져온다. 처키라는 이름의 인형은 “우리는 베스트 프랜드”라며 앤디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31년 전 오리지널 작품과 이번 <사탄의 인형>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처키’를 사악하게 만드는 ‘근원적 요소’다. 살인마의 영혼이 ‘주술’의 힘을 빌려 인형에 깃들었다는 오컬트적 모티브는 싹 제거됐다. 대신 급격한 신기술의 발전이 이를 대체한다. 사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접속’만 하면 온 집안의 전자기기들을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처키는 ‘노동 착취와 비인간적 대우’에 분개한 베트남 오이엠(OEM) 공장 노동자의 ‘악의적 조작’의 산물이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처키는 빠른 학습과 진화 과정을 거치며 점점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일상 속에 흔히 쓰는 청소기, 텔레비전, 자율주행 자동차, 온도조절기, 시시티브이, 드론 등의 시스템을 해킹해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다.
처키의 난동은 원작 속 ‘교묘함’을 넘어 ‘잔혹함’으로 진화했다. 낄낄대며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보는 아이들을 모방한 처키의 유혈 낭자한 살인에 “애들 앞에선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속담을 “인형 앞에선…”으로 바꿔야 할 듯하다. 다만 ‘처키의 외모’가 흥행 반감 요소다. 좀 더 사람에 가깝게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특유의 부스스한 머리와 오묘한 사악함이 깃든 예전 얼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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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나벨 집으로>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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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고 싶었지?”…‘애나벨’
1편 93만여명, 2편 193만여명을 동원하며 국내에서 인지도를 높여 온 <애나벨> 시리즈가 3편 <애나벨 집으로>로 귀환했다. 제임스 완의 ‘컨저링 유니버스’ 일곱 번째 작품이다.
<애나벨>은 이야기 전개 순서로 따지면 2편-1편-3편으로 진행된다. 1편에서 간호사 손으로 넘어갔던 애나벨은 3편 시작, 퇴마사인 워렌부부의 집으로 회수돼 ‘성물로 만든 유리장’안에 갇힌다. 1년 후, 워렌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10살 난 딸 주디와 보모 메리 앨렌, 그의 친구 다니엘라가 모인다. 오컬트 뮤지엄이라 부를 만큼 기괴한 물건들로 둘러싸인 워렌부부의 집에서 깨어난 애나벨은 악령들을 되살리며 주디 일행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모토는 개나 줘버려~! <애나벨3>는 작정하고 무서운 장면을 곳곳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죽은 자의 눈에 올렸던 동전, 몇초 뒤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의 티브이, 악령의 메시지를 타이핑하는 타자기, 귀신에 홀리게 하는 악령의 드레스 등 사방이 ‘공포 유발 물건’뿐. 이것들이 한꺼번에 깨어나면서 밀려오는 공포는 극강의 긴장감을 안긴다. 극장 의자에 앉아 오도 가도 못하고 몸을 꼬아대는 관객이 좁은 집 안에서 갇힌 주디 일행에 감정이입 하는 것은 당연지사. 언제나 그렇듯 곱게 땋은 머리, 과하게 웃는 표정, 불길한 하얀 드레스의 ‘애나벨’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엉뚱한 곳에 놓인 것만으로 사지가 강직되는 독보적 공포를 선사하는 것은 애나벨만의 강점이다.
그런데 호러물 속 인물은 왜 꼭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골라 할까? 공포 이전에 답답함이 목을 죈다. 집안의 온갖 물건에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다니는 다니엘라는 올여름 공포영화 속 최고 민폐 인물로 선정될 만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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