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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8 09:06 수정 : 2019.06.18 15:24

라디오 방송국 피디인 태규(최민수)와 성우인 지혜(심혜진)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다.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17)결혼 이야기
감독 김의석(1992년)

라디오 방송국 피디인 태규(최민수)와 성우인 지혜(심혜진)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다.
<결혼 이야기>는 두 가지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다. 먼저 ‘기획영화의 효시’다. 1980년대까지 충무로나 지방 토착 자본으로 제작되던 한국영화는 1990년대 새로운 돈줄을 만난다. 대기업이 진출한 것이다. 자본의 성격이 바뀌면서 영화도 바뀌었고, 관성이 아닌 기획에 의해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결혼 이야기>는 그 시작이었다. 대중의 트렌드에 대한 리서치 결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결정되었고, 상큼한 마케팅과 전자제품 피피엘(PPL: 콘텐츠 내 상품 간접광고)이 결합했다. 주연은 심혜진과 최민수. 당대 가장 ‘핫’하면서도 ‘뉴’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피디 태규(최민수)와 성우인 지혜(심혜진)는 같은 일터에서 일하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내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결혼 이야기>는 표면과는 다른, 꽤 묵직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였던 문성근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결혼이란 뜨거운 감자를 삼키느냐 마느냐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혼 이야기>는 과감히 그 결정을 한 남녀들에 대한, 1990년대 현재 대한민국 부부 관계를 다룬 임상실험 보고서 같은 영화다.

생각과 마음이 너무나도 잘 통한다고 믿었지만, 막상 결혼생활을 시작하자 지혜(심혜진)와 태규(최민수)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전체적으론 코믹 톤이지만, 이따금씩 툭툭 던져지는 대사들은 관객을 비수처럼 찌르며 우리의 결혼제도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 폭로한다. 전업주부는 가구 같은 존재라는 어느 선배는 지혜(심혜진)에게 충고한다. “너도 빨래판 꼴 된다. 평생 대주기만 하는 빨래판.” 여자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토록 암울한 묘사가 있었던가? <결혼 이야기>는 결혼이 서로 밀고 당기는 핑퐁이 아니라, 억압적인 가부장 체제에 여성이 걸어 들어가는 불평등한 계약임을 명시한다.

좋은 배우자란 없으며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이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아내가 결혼했다> 등의 영화가 등장할 수 있는 서사적 전통을 마련했다. 달콤한 장르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메시지를 품은 ‘당의정’. 이 전략은 기획영화 시대에 리얼리즘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술이기도 했다.

김형석/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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