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7 19:24
수정 : 2019.06.07 19:3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악당-가해자 추적 조사’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사에키 슈이치(히가시데 마사히로)는 한 중년 부부한테서 사카가미 요이치(아오야기 쇼)라는 남자의 동향을 파악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사카가미에게는 과거에 고등학교 동급생 호소야 겐타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전과가 있다. 그의 과거를 추적하던 사에키는 의뢰인들이 바로 그 피해자의 부모라는 사실을 알고 난감해진다. 의뢰인들은 이를 부인하지 않고, 사에키에게 오히려 더 곤란한 부탁을 한다. “사카가미가 용서해도 될 만한 인간인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용서해야 한다면 그럴 만한 근거를 찾아주세요.”
묵직한 사회파 장르드라마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전달해온 일본 와우와우 채널이 또 한편의 수작을 선보였다. 범죄 전과자들을 추적 조사하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악당-가해자 추적 조사>는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로 떠오른 야쿠마루 가쿠의 2009년작 <악당>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악당>은 이미 2012년에 톱스타 다키자와 히데아키 주연의 스페셜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당시의 단막극 형식으로는 미처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번에는 연속드라마로 옮기면서 원작의 심층적인 메시지에 한층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사에키가 받은 의뢰가 그 자신에게 해당되는 질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에키에게는 15년 전 누나가 잔혹한 범죄에 희생당한 비극적 가족사가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그의 누나는 사에키의 생일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세 남자로부터 강간, 살해당했다. 체포된 범인들이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뒤에도 사에키는 계속해서 그들의 동향을 추적해오고 있었다. 호소야 겐타 부모의 의뢰와 자신의 트라우마를 분리할 수 없었던 사에키는 사카가미 요이치를 용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지만 이는 뜻밖의 결과를 불러온다.
복수와 용서 사이의 갈등은 이미 흔한 소재임에도 꾸준히 이야기를 통해 반복된다. 한 평론가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딜레마를 더없이 잘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일견 명징해 보이는 악 앞에서 대부분이 쉽게 심판자의 자리를 차지할 때, 바로 그들에게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되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이야기다. 이 작품도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가령 사에키가 사카가미 요이치에 대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당’이라고 내린 결론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타인을 향해 내린 판단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것을 목격한다. 드라마는 여기에 소년법과 같은 사회제도의 문제를 더해 한층 깊은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제목은 ‘악당’이지만, 복잡다단한 악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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