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4 11:49
수정 : 2019.06.0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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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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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기택 연기한 송강호 인터뷰
“기생충은 계급대립 아닌 인간 존엄에 대한 영화”
“상은 상이고 영화는 영화대로 봐주길”
“봉준호 감독과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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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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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요? 전혀요! 황금종려상은 남우주연상 10개를 붙여도 못 받을 상인데요. 그 안에 모든 게 다 포함된 거죠. 너~무 행복합니다.”
칸에서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배우 송강호의 목소리엔 음절 하나하나마다 ‘기쁨’이 묻어 있었다. <기생충>의 국내 개봉을 즈음해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유력한 후보였다’는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전언에 대해 “이름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겸손 모드더니 <기생충>의 작품성과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는 극찬을 쏟아부었다. “칸에 가기 전부터 저는 <기생충>에 대해 감히 ‘봉준호의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독창성과 완성도, 통찰력에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사실, 송강호야말로 ‘칸의 남자’다.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까지 공통분모는 ‘배우 송강호’다. “누가 저한테 ‘수상 요정’이라고 하던데, 천만 요정은 들어봤어도 수상 요정이라니…. 으허허허. 운 좋게도 제가 세계 최고 영화제라는 칸에도 자주 가고, 갈 때마다 작품이 상도 받아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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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주연배우 송강호.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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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감독과 칸의 레드카펫을 수놓은 그이지만, 봉준호 감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호호 콤비’로 불리는 둘은 앞서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를 함께 만들며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가 ‘봉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이유다. “봉 감독과는 말 하지 않아도 아는 관계랄까요? 첫 작품인 <살인의 추억>을 한 6개월 찍었는데, 마지막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비가 억수같이 오는 장면을 마지막 촬영으로 끝내고 논두렁을 걸어오는 봉 감독과 마주쳤죠. 아무 말 없이 뜨거운 포옹을 했어요. 서로에 대한 ‘무언의 고마움’인 거죠. 봉 감독과의 20년 가까운 인연을 생각하면 그 날, 그 느낌이 떠올라요.”
그렇게 긴 세월 호흡을 맞춘 호호 콤비지만, <기생충>은 촬영 내내 배우 송강호에게도 특별하고 낯선 영화였다고 했다. “인물보다는 형식의 낯섦이 큰 과제였어요. 일관된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아주 변화무쌍한 영화잖아요? 웃음과 서스펜스와 공포와 슬픔이 뒤섞인 영화인데, 그 여러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어야 하니까요.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면서 최고 난도의 어려움이기도 했어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맡은 ‘가난한 집 가장 기택’ 역할은 최선을 다했지만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쓸쓸한 대한민국 아버지’의 표본이다. “기택은 온갖 직업을 전전한 인물이잖아요.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획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예요. 생존하기 위해 ‘연체동물’처럼 살아가며 발버둥 치는 우리의 자화상이랄까?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계획이 없는 거지’라는 극 중 대사가 그런 자조를 드러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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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주연배우 송강호.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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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면 잠이 잘 오지 않는 작품’, ‘꽤 오랫동안 우울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저는 관객들이 몰입하기보단 관망하는 태도로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영화 속에 ‘아들아, 넌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식의 연극적 대사가 꽤 있는데, 거리 두기를 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생각해요. 만화를 보듯 흥미롭게 기택네와 박 사장네 집안을 들여다보는 느낌?”
분명 <기생충>은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봉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도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기생충>은 한 가지 용어로 표현하기엔 더 많은 것들이 함축돼 있다. 송강호는 “단순하게 부자와 가난한 자를 이항대립 시키는 작품이라기보단 타인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존엄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며 “이런 점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 면에서 가슴 밑바닥에 앙금이 남는 엔딩이 무척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영화적으로 포장을 한다면 관객들 보기에 편안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솔직하지 못한 결말이죠. 현실을 직시하고자 한 봉 감독의 결정인데, 예술가로서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칸 황금종려상 수상’ 타이틀이 영화의 흥행에 강력한 ‘후광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하고 있다. 개봉 닷새만인 3일 현재 손익분기점인 370만명 넘는 관객이 몰렸다. 송강호는 “상은 상이고, 영화는 영화대로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박찬욱 감독조차 ‘완벽한 영화’라고 엄지를 치켜 들었다는 점을 밝혀둔다”며 멋쩍은 듯 폭소를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질문 하나 더. 다음 작품도 ‘호호 콤비’ 합작품일까? “감사하게도 오는 8월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제가 ‘엑설런스 어워드’(평생 공로상)를 받는데, 봉 감독도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대요. 자세한 얘긴 그때 하자고 미뤄두고 있는데…. 그렇다고 ‘봉 감독 차기작 출연 확정’ 이런 기사 쓰시면 안 돼요! 미정입니다! 미정! 으허허허.”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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