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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7 13:07 수정 : 2019.04.07 19:56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김윤석. 쇼박스 제공

[영화 ‘미성년’ 연출 김윤석]

부모의 불륜 10대 눈으로 풀어내
발랄하게 ‘뼈 때리는’ 블랙코미디
무책임한 어른들과 여고생 ‘교차’

연출·연기 1인2역…제작기간 5년
“우주 지키는 건 어벤져스가 하니
저는 계속 이웃들 얘기 하려구요”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김윤석. 쇼박스 제공
“어휴~딱 열배는 더 떨리네요.”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를 한 배우 김윤석이 개봉(11일)을 앞두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첫 소감은 이랬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작품의 주연배우로 대중들 앞에 섰건만, 이름 뒤에 붙은 ‘감독’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감독으로 변신하며 제일 힘들었던 게 무어냐 물으니 “체력 관리”였단다. “배우는 자기 촬영 때 와서 찍고 가면 되는데, 감독은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후반 작업, 그리고 이렇게 홍보할 때까지 숨 돌릴 틈이 없네요.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탄수화물로 체력 비축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더라고요. 허허허.”

<미성년>은 개봉 전부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부모의 불륜을 두 10대 여고생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어른들의 막장 드라마’를 경쾌하면서도 뼈 있는 블랙코미디 감성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주리(김혜준)가 ‘니네 엄마가 우리 아빠 꼬셨어. 불륜 중이야. 알아?’라고 하니, 윤아(박세진)가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라고 받아친다. “청년 창작 희곡 발표 모임에서 이 장면을 보는데,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더라고요. 어른이라면 이리 당당하게 말할까? 우선 숨기고 보겠죠? 아, 흔하디흔한 ‘불륜’이란 소재도 이렇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구나!” 그렇게 희곡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무려 5년이 걸렸다.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김윤석. 쇼박스 제공
그런데 ‘50대 아재’가 발칙한 소녀 감성을 어찌 그리 맞춤하게 그려냈을까? ‘여성주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데다 장면마다 섬세한 디테일이 놀라울 정도로 반짝인다. “제가 중학생, 고등학생 딸이 있어요. 요즘 애들 이야기 많이 듣죠. 그리고 작가도 여성, 편집기사도 여성, 피디도 여성이라 모르면 자꾸 묻고 상의하고 그랬어요.”

김윤석은 영화에서 불륜의 한쪽 당사자인 ‘대원’(주리 아빠) 역을 맡으며 연출뿐 아니라 배우까지 ‘1인2역’을 한다. 영화 속 ‘대원’은 지질하기 그지없다. 병원에 입원한 ‘미희’(김소진·윤아 엄마)를 몰래 찾아갔다가 주리·윤아와 마주치자 황망하게 도주하는 대원의 모습은 영화의 백미다. “대원이 딸 중학생 때 신던 운동화 브랜드와 사이즈를 기억하잖아요? 그때까진 성실한 가장이었을 거예요. 살다 보니 일탈을 한 거죠.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는 ‘익명성’을 표현하기 위해 대원은 꼭 필요한 장면 외에는 뒷모습만 나와요. 남에게 부탁하는 건 실례 같아 제가 맡았죠.”

‘카리스마 눈빛’ 하나로 관객을 제압했던 그간 김윤석의 이미지와는 극과 극인데? “아, 저 원래 실없는 농담 잘하는 웃기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관객은 <거북이 달린다>나 <완득이> 속 제 모습은 잘 기억 못 하시더라고요. 허허허.”

1인2역으로 동분서주하다 보니 ‘선배 감독’ 하정우가 그리 대단해 보일 수 없더란다. “카메라 앞에서 배우 노릇 하다 끝나면 카메라 뒤로 가 감독 노릇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진 않더라고요. 90살 넘어 <라스트 미션> 연출·주연을 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증명하듯 할리우드는 시스템이 잘돼 있는데, 한국은 안 그래요. 전 비중이 작은 역이지만, (하)정우는 <허삼관>에서 연출에 주연까지 두 몫을 했으니 엄청난 거죠.”

영화 <미성년>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는 이 막장을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여고생과 수습은커녕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어른들을 교차하며 ‘성년과 미성년을 나누는 경계’에 대해 묻는다. “제목 미성년은 ‘우리는 모두 미성년이다’의 줄임말이에요. 나이만 먹는다고 성인이 아니죠. 남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잊고 방심하면 점점 나잇값 못 하는 위험에 처하게 돼요.” 그런 의미에서 문제적 결말은 논쟁을 부를 듯하다. “30번 정도 새로 고침을 했던 결말인데, 절반은 성공했네요. ‘충격적·논쟁적’이라는 말 자체가 인상적이었다는 증거 아닌가요? 결말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고 싶어요. 음, 제 역할 못하는 어른들에게 경고? 아니, 살짝 고문을 하고 싶었던 것도 같네요. 하하하.”

경쟁작·흥행성적·손익분기점 등 계산기를 복잡하게 두드리기엔 아직 “멘탈이 나가 있는 상태”라는 김윤석. ‘두번째 연출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아, 찍는 내내 계속 당 떨어지더니 아직 회복이 안 되네요. 당분간 두 가지(감독·배우)를 한꺼번에 감당하는 작품을 할 생각은 없고요. 우주를 지키는 건 다른 분들(<어벤져스>)이 하니, 전 계속 이웃들 이야기에 눈 돌리려고요. 허허허.”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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