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8 14:22
수정 : 2019.03.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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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 매니지먼트 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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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로 아들 잃은 엄마 ‘순남’역
처음엔 두려웠지만 용기 내서 선택
“사람들에게 ‘같이 슬퍼하자’ 아닌
아픔 나누면 위로 된다는 메시지”
“세월호 둘러싼 오해와 편견
상업적이란 쓴소리도 우려했지만
영화 찍으며 비로소 바로 선 느낌
되레 따뜻한 위로와 에너지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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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 매니지먼트 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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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큼은 “칸의 여왕”이나 “믿고 보는 배우”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이웃이자 조용히 함께 울어주는 엄마이고 싶었다. “그 심정 이해한다”는 말을 하기도 차마 죄스러운 엄청난 참사 앞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를 들고 유족들 앞에 섰을 때 깨달았다. 오히려 자신이 위안받고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영화 <생일>의 개봉(4월3일)을 앞두고 마주한 배우 전도연(46)의 목소리엔 인터뷰 내내 물기가 어렸다. 자꾸만 붉어지는 눈시울에 간간이 대답도 끊겼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두려움에 거절했어요. 그런데 표면적 거절과 달리 ‘내가 절대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될 작품이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슬프기만 한 작품이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살아야 할 사람들의 등을 살며시 토닥여주는 따뜻한 영화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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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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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생일>에서 전도연은 4월16일에 아들 수호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 순남을 연기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한 순남은 일상을 건조하게 살아내며 견딘다. 마트에서 일을 하고, 아들의 방에 새 옷을 사서 걸고, 꾸역꾸역 밥을 먹으면서.
그는 앞서 <밀양>(2007)에서도 아이 잃은 엄마를 연기한 바 있다. “<밀양>의 신애를 대하는 저와 <생일>의 순남을 대하는 제가 너무 달랐어요. <밀양> 때는 신애를 이해하려고 온몸을 불살랐어요. 순간순간 이 모든 게 가짜고 그저 흉내 내는 감정인 듯해서 고통스러웠죠. 하지만 이제 한 아이의 엄마로, 아이 잃은 마음이 어떨지 조금이나마 알게 돼서인지 오히려 한발 뒤로 물러나 순남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연기하며 내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 큰 슬픔에 휩쓸려선 안 되겠단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떠난 아들 수호만큼 남겨진 딸 예솔이가 마음에 박혔다. 수호의 빈자리가 너무 커 순남은 예솔이를 느끼지 못한다. “엄마 눈치를 보느라 예솔이는 감정을 거세당한 거죠. 혼이 나고 잠든 예솔에게 ‘미안해. 엄마가 못나서 그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정말 짠하더라고요. 제겐 연기의 결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했고요.”
<생일> 속 순남은 차마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울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떠나보내게 될까 봐서. 그런 순남이 아들 수호의 생일 모임을 하기 전 딱 한 번, 수호의 방에서 목놓아 통곡한다. “시나리오엔 ‘아파트가 떠나갈 듯 오열한다’고 적혀 있었어요.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도 어떻게 찍을지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떠난 수호를 부여잡은 순남이 딱 느껴지니까 쥐어짜거나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어요. 옆집 우찬이 엄마가 와서 안아주며 위로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따뜻함이 온몸을 휘감으며 다시 설 수 있는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영화 속에는 세월호를 둘러싼 세상의 차가운 시선도 언뜻언뜻 비친다. ‘보상금’ 운운하는 사람들,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사람들. “실제로 세월호에 대한 오해도 많고, 편견도 많잖아요. 피로감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영화는 그런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들이 우리 모습일 수 있지 않냐고 묻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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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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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는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검열’의 과정이기도 했다. ‘세월호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까봐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다. “온전히 영화로만 평가받지 못할까봐 겁이 났어요. 무엇을 결정하든 ‘좋아요’ 대신 ‘괜찮을까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비겁하게 등을 돌렸던 제가 영화를 찍으며 비로소 바로 선 느낌이 들더라고요.” 유족 시사회는 그런 점에서 전도연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한 어머니가 수를 놓은 천으로 만든 지갑에 노란 리본을 묶어 제 손에 꼭 쥐여주시며 ‘고맙다’고 하시는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더 감사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은 자리였죠.” 고였던 눈물이 끝내 또르르 흘렀다.
전도연은 이 영화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다 함께 슬퍼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프지만 함께 나누면 위로가 되지 않겠느냐”고 손 내미는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 속 ‘수호의 생일 모임’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틀 동안 힘들게 찍은 장면이에요.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함께했기에 감당할 수 있었어요. 관객들도 이 생일 모임에 함께 초대됐다는 생각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전도연은 최대한 많은 관객이 이 영화와 만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너무 슬플까봐 못 보겠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용기처럼 관객들도 용기를 내주시면 안 될까요? 누군가 ‘<생일> 어땠어?’라고 물으면 ‘너무 슬펐어. 그런데 너도 꼭 봐’라며 함께 나누는, 그런 영화가 됐으면 해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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