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9 13:50
수정 : 2019.03.19 21:25
[울림과 스밈] 좀더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 남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도/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시인의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중-
3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키던 세월호 천막 14개 동이 모두 철거됐다. 아이들의 영정사진도, 그 영정사진을 감쌌던 노란 국화꽃도 광장을 떠났다. 2014년 7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노숙 천막을 친 지 4년8개월, 1700여일 만의 일이다.
우리 사회의 영원한 트라우마인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스크린에도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걸린다. 비리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월호 참사를 범죄드라마의 틀 안에서 다룬 <악질경찰>(20일 개봉)과 4월16일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을 계기로 남겨진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그린 <생일>(4월3일 개봉)이다. 두 작품이 이제까지의 영화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세월호 참사를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풀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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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질경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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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소식이 전해질 때부터 영화계 안팎에서는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을 상업영화의 소재로 삼은 사례는 꽤 많지만, 사건 발생 시점부터 영화의 개봉까지가 이렇게 밭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첫 상업영화 <화려한 휴가>가 나오기까지 27년, 6월 항쟁을 촉발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첫 상업영화 <1987>이 나올 때까지는 무려 30년이 걸렸다.
실제로 개봉을 앞두고 영화를 미리 본 기자들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선 두 영화는 세월호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이정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악질경찰>은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소환한다. 범죄를 일삼던 ‘무늬만 경찰’인 조필호(이선균)가 세월호 때 절친을 잃은 소녀 미나( 전소니)와 얽히면서 시궁창 같은 세상을 만든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각성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종언 감독의 입봉작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전도연)과 아빠 정일(설경구)을 중심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린다. 자식의 죽음을 차마 인정할 수 없었던 부모가 아들의 생일을 맞아 주변 사람들과 아들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다.
두 작품 모두 세월호 유가족과 충분한 소통을 거쳤다며 ‘진정성’을 강조한다. 이정범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보며 참담함과 분노를 느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범죄드라마 장르에 녹였다. 2015년 11월 초고를 완성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탓에 투자도, 캐스팅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종언 감독 역시 “2015년 여름부터 안산을 찾아 유가족 곁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을 시나리오에 담았으며 수차례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지난 14일 에스엔에스(SNS)에 글을 올려 그 진정성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눈물(<생일>)과 분노(<악질경찰>)가 함께 있어야 고인 웅덩이가 아닌 강물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는 말로 두 작품 모두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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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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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정성과는 별개로, 범국민적 상처와 고통으로 남은 사건을 다루는 감독의 손길이 더없이 예민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점은 수천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악질경찰>은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주요 소재가 굳이 세월호여야 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표현 방법도 국민 감성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의 안타까운 상황이 생중계되는 와중에 애인과 모텔에서 뒹구는 경찰을 비추는 장면을 ‘영화적 장치’로 이해하고 편히 넘길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무리 조필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쉬이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애당초 ‘화끈함’과 ‘통쾌함’이 관람 포인트인 범죄오락물의 외피에 세월호를 담으려 했던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인으로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는 감독의 의도에는 박수를 보낸다. ‘잊히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기억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에도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영화를 보며 ‘동의’와 ‘공감’ 대신 ‘의문’과 ‘걱정’이 앞선다면, 감독은 고민의 깊이가 충분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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