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3 11:10
수정 : 2019.02.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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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감독.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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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만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작품 세계 분석
‘과속스캔들’·‘써니’ 각색하며 충무로에서 활약
페이크 다큐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데뷔
‘스물’·‘바람 바람 바람’ 통해 차진 말맛 뽐내
코믹대사 뿐 아니라 인생 진리 녹인 찰떡 명대사도
“주성치 영화 보며 자라…코미디 디엔에이 탑재”
전작들은 내면의 거북한 욕망·비밀 까발렸지만
‘극한직업’은 대놓고 웃고 즐기는 영화 지향
“호러·스릴러 빼고 모두 오케이…차기작은 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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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감독.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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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흥행은 없었다. 천만인가 2천만인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관객이 ‘수원왕갈비치킨’을 맛보러 극장을 찾을까? 개봉 보름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은 20일 만에 1300만 고지를 점령하며 한국 코미디 영화 흥행 1위인 <7번방의 선물>(1281만1435명)은 물론 <도둑들>(1298만3976명)까지 제치고 역대 박스오피스 6위에 오르는 괴력을 과시했다. 12일까지 누적관객수 1324만7740명으로, 이제 5위 <아바타>(1333만8863명), 4위 <베테랑>(1341만4200)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빵 터지는 웃음’ 하나로 충무로를 평정한 <극한직업> 성공의 중심에는 감독 이병헌(39)이 있다. 그는 어떻게 단 4편 만에 천만클럽이라는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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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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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배우 이병헌인 줄 알고 배우와 감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인가 싶었다”는 배우 진선규의 말처럼, 일부 관객은 혼동을 할 법도 하다. 물론 이병헌 감독은 동명이인인 배우 이병헌 못지않게 외모마저 훈훈하다. 자타공인 “배우보다 잘 생긴 감독”이니까. 그 덕에 한때는 <무비 스토커>, <먹는 존재>, <위대한 소원> 등의 작품에 조연·특별출연으로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정작 그는 “호기심에 출연했을 뿐,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며 얼굴을 붉히기는 하지만.
이병헌 감독의 장기는 본래부터 ‘코미디’였다.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의 각색을 맡아 흥행에 큰 힘을 보탠 이 감독은 이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2013), 스무살 청춘들의 찌질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낸 첫 상업영화 <스물>(2015), 네 남녀의 좌충우돌 불륜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2018), 그리고 <극한직업>을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세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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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물>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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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코미디일까? 이 감독은 “주성치 코미디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많이 보며 자랐다”며 “웃기는 장르가 좋고, 비교적 잘하는 편이라 계속 파고드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코드가 ‘병맛’에 집중된 까닭이 이해된다. 그가 주성치에게 영향을 받은 점은 또 있다. 주성치 영화에 늘 오맹달이 나오는 것처럼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배우 양현민이 출연한다. <힘내세요, 병헌씨>에선 떠벌이 프로듀서 ‘범수’, <스물>에서는 삼총사의 아지트 소소반점 사장, <바람 바람 바람>에서는 반전의 키를 쥔 ‘맹인 안마사’, <극한직업>에서는 마약 조직 2인자 홍상필로 출연해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양현민은 “<힘내세요, 병헌씨>를 찍을 때 출연료를 한 푼도 못 줬다는 죄책감에 계속 캐스팅하는 듯하다. 겉으론 싸늘해 보이지만 의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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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 바람 바람>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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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차진 말맛’이다. 입에 쫙쫙 붙는 대사들은 관객의 배꼽을 빼놓는다. 그는 앞서 “고교 시절 야설(야한소설)로 글쓰기 실력을 키웠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말맛의 힘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조감독이 촬영 도중 화장실에 간 병헌에게 “일은 ×같이 하면서 똥은 잘 나오디? 시원해?”라고 퍼붓자 “못 먹고 못 자도 똥은 싸야지. 설사가 막 나오는데 막냐? 똥구멍을 떼냐? 막, 방뇨조절 시스템이 있고 그러냐? 차라리 기저귀를 채워 주든지!”라고 들이받는 장면은 관객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스물>에서 한창 이성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경재(강하늘)가 짝사랑에게 고백을 하는 상상신에서 “선배 엉덩이에 꼬추 비비고 싶어요”라는 헛소리를 할 때, 관객은 민망함이 몰고 오는 불쾌감보다는 적나라하고 솔직한 대사가 주는 쾌감에 폭소를 터뜨린다. <바람 바람 바람>에서도 겉옷 주머니에서 여자 팬티가 발견되자 “내 꺼야. 입으려고 샀어”라며 눙치거나 바람 핀 사실이 들통나자 여동생에게 “엄마 얼굴 기억나?”라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석근(이성민)의 모습은 ‘이보다 더 웃길 순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찰떡같은 명대사도 많다. <힘내세요, 병헌씨>의 “네,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번엔 정말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싶네요”라는 마지막 독백이나 <스물>의 “거 좀 힘들다고 울어 버릇하지 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등의 대사는 지금도 누리꾼들 사이에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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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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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밀히 말해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월드’는 <극한직업>을 기준으로 정확히 나뉜다. 이전 작품이 주인공의 내밀한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대사의 맛에 집중했다면, <극한직업>은 ‘정통 시츄에이션 코미디’다. 라이벌인 최반장(송영규)이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하자 고반장이 가장 먼저 따라나서는 장면, “동생이 주는 사건을 받는 게 자존심 상하냐”는 말에 “동생으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형”이라고 굽신대는 장면 등에선 상황적 반전이 주는 코믹함이 폭발한다. 이 감독은 “전작들에선 내면의 거북한 욕망이나 비밀을 까발려 희화화시켰다. 그래서 불편해 하는 관객도 많았다. 하지만 <극한직업>은 남녀노소 누구나 대놓고 편하게 웃을 수 있다. 나의 세계는 변화하고 있고, 폭넓게 표현하는 방식도 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호러·스릴러를 빼고는 다 하고 싶다. 그러나 어떤 장르든 코믹 요소는 빠지지 않을 듯하다”며 ‘코미디 디엔에이’를 강조했다. 차기작은 30대 여성이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다.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 느낌이 물씬 풍긴단다. <극한직업>으로 흥행의 꼭짓점을 찍은 이병헌 감독이 펼쳐 보일 다음 이야기는 어떨까? 사뭇 기대가 된다.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웰컴 투 이병헌의 코미디 월드!“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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