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3 04:59
수정 : 2019.01.23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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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에 출연한 배우 진선규.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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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개봉하는 ‘극한 직업’으로 첫 주연
절대 미각 소유한 마약반 형사 맡아
‘롱 리브 더 킹’ ‘암전’ ‘퍼펙트 맨’ 줄줄이
“맨 아래층에서 꼭대기로 솟은 기분
예전과 달리 포스터에도 얼굴 나와
몸이 허락하는 한 액션 영화 계속…
수많은 무명배우들의 희망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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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에 출연한 배우 진선규.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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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오디션만 100번 보던 무명배우에서 감독이 찾아가는 주연배우로.’
이런 ‘인생역전’이 또 있을까. 배우 진선규(42)는 지난 1년 반 사이 “맨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솟아오른 기분”이라고 했다. 당연하다. 그는 2017년 <범죄도시>에서 신흥 조선족 범죄조직 흑룡파 보스 장첸의 오른팔 ‘위성락’ 역할을 맡아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연극 <보이첵>으로 데뷔한 지 17년 만에 긴 무명의 설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하지만 그 놀라운 변화를 그는 “내 가족에게 먹고 싶은 거 다 먹이고,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밥 값은 내가 낼게’라고 말할 수 있어 참 행복하더라”는 소박한 말로 표현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올해 진선규는 <극한직업>, <롱 리브 더 킹>, <암전>, <퍼펙트 맨> 등 네 편의 영화에서 ‘주연 자리’를 꿰차며 대세 인증을 하는 중이다. 첫번째 주연작 <극한직업>의 개봉(23일)을 앞두고 만난 그는 “이병헌 감독과의 첫 미팅 날 ‘정말 이렇게 큰 역할을 제게 주는 거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을 정도로 실감이 안 났다”고 했다. “워낙 충무로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시나리오라 황송한 지경이랄까. 그런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범죄도시>와는 전혀 다른 장르를 하고 싶다는.”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형사 5인방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수원왕갈비치킨’이 일약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벌어지는 요절복통 해프닝을 담은 작품이다. 진선규는 영화에서 ‘절대 미각’을 소유한 마형사 역할을 맡아 ‘수원왕갈비치킨’의 주방을 책임진다.
“촬영 한 달 전부터 요리학원에서 치킨 장인을 사사했죠. 보통 닭을 16조각 내는데, 자를 때 뼈를 건드리면 안 돼요. 물렁뼈 부분에 칼을 넣어 단번에 탁탁 잘라야 하죠. 집에서 연습 하면서 닭 30마리는 잡은 듯해요. 왕갈비 양념을 만들 때 필요한 파도 수십단은 썰었나 봐요.” 오랜 시간 자취를 한 덕에 김치찌개·미역국 등 웬만한 요리는 기본으로 할 줄 안다는 진선규에게도 ‘칼날 안 보고 썰기’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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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 직업’ 속 진선규. 사진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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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만큼이나 영화 속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액션’이다. 학창시절 배우기 시작한 태권도·합기도·절권도로 다져진 ‘액션 본능’이 큰 도움이 됐단다. “어린 시절 허허실실 순해서 괴롭힘당하기 딱인 성격이었죠. 그래서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것처럼 꾸준히 운동을 했어요, 지금도 나이에 견줘 좀 날렵한 편이랄까? 하하하.” 그런데 요즘 몸을 아껴야겠단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단다. “몸이 허락하는 한 액션 영화는 계속 찍고 싶지만, 배우 생활 이제 시작인데 조심 해야죠. (들고 있던 찻잔을 가리키며) 이렇게 십전대보탕도 챙겨 먹어요. 하하하.”
마약반 5인방의 “독수리 5형제 같은 조화”가 돋보이는 영화지만, 그중에서도 ‘과격한 썸을 타는’ 장형사(이하늬)와의 키스신이 화제다. 멋쩍게 웃으며 내놓은 해명이 빵 터진다. “그건 멜로가 아니라 액션이죠. 직업엔 투철하지만 감정엔 서툰 두 남녀의 행동이니 액션신으로 생각하고 전투적으로 찍었어요.” <파이란> 같은 애절한 정통멜로를 꿈꾼다는 진선규는 “이런 액션 비스무리한 터치로 (멜로에) 자신감이 붙을 리 있겠냐”며 웃었다. 영화 속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마형사 캐릭터에 대해서도 “내 얼굴과 너무 어울리는 컨셉이다. ‘얼굴도 요상하게 생겨서~’라는 대사에 기분이 좋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주연으로 발돋움하고도 “나는 예전과 똑같은 진선규일 뿐”이란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아달라니 “포스터에 얼굴이 나온 것”이라며 “예전엔 구구절절 설명했는데, 이젠 포스터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나, 이 영화에 나와!’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또 한 가지 변화는 이젠 어느 자리에 가던 ‘대화 상대’로 대접 받는다는 것이란다. “전엔 다들 저를 잘 모르니 무슨 이야기를 건네겠어요? 하지만 이젠 남의 회식자리에 가도 유명한 분들이 먼저 말도 걸어주죠. 하하하.”
<범죄도시>에 대해 ‘그동안 수고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준 작품’이라고 했던 진선규에게 <극한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두 번째 대표작? ‘배우 진선규에게 위성락이나 마형사와는 또 다른 모습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 됐으면 해요.”
시종일관 겸손한 진선규는 목표마저 소박하다. “작품마다 톱니바퀴를 잘 굴러가게 하는 부품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어요. 그리고 수많은 무명배우에게 지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면 때가 온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작은 사례가 됐으면 합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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