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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5 11:44 수정 : 2018.11.25 20:47

지난 19일 저녁 서울 강남구 CGV 청담씨네시티점에서 열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떼창 단체관람 참가자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0℃] ‘보랩’에 빠진 사람들

“우리끼리 노래하며 보면 어떨까”
콧수염·야광봉 등 직접 준비하며
상영관 통째로 빌려 ‘떼창 단체관람’

“라이브 에이드 무대 보며 뜨거워져”
“눈치 볼 필요 없으니 엄청 부러워해”
저마다 퀸에 얽힌 추억 나누며
영화관에서, 뒤풀이에서 밤 불살라

“이 좋은 노래들이 다…그땐 몰랐죠”
프레디 머큐리 추모열기까지 더해
다양한 세대 아우르며 흥행 역주행

지난 19일 저녁 서울 강남구 CGV 청담씨네시티점에서 열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떼창 단체관람 참가자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록밴드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과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10월31일 개봉)의 열풍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 박스오피스 역주행으로 뒤늦게 1위에 오르며 지난 22일 기준 360만 관객을 돌파했다. <비긴 어게인>(342만명)에 이어 <라라랜드>(359만명) 기록까지 뛰어넘으면서 국내 최고 흥행 음악영화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엔(N)차 관람 바람도 잦아들 줄 모른다. 일반 상영관뿐 아니라 스크린이 3면으로 펼쳐지는 스크린엑스관, 아이맥스관, 사운드 특화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관 등을 돌며 반복 관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급기야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뭉친 이들이 극장을 통째로 빌려 영화를 보며 ‘떼창’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19일 저녁 서울 강남구 씨지브이 청담씨네시티점에서 열린 <보헤미안 랩소디> 떼창 단체관람 현장을 찾아가봤다.

발단은 김용권씨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린 영화 감상평이었다. 여기에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댓글을 달면서 “우리끼리 맥주 마시고 노래하며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까지 나왔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지만 페이스북에서 만난 친구사이인 김민규·김용권·이동희·장수미 등 4명이 의기투합하고 단체관람을 추진했다. 처음엔 20석짜리 작은 극장을 빌리려다 “기왕 하는 거 판을 키워보자”며 76석짜리를 빌렸다. 각자 페이스북에 공지를 띄우니 이틀 만에 만석이 됐다. 취소표를 기다리겠다는 대기자들도 줄을 섰다.

회비 3만원씩 걷어 극장 대관료를 내고 남은 돈으로 맥주·콜라·팝콘에다 프레디 머큐리 코스프레용 콧수염과 야광봉까지 사서 나눠주기로 했다. 또 영화 오에스티 음반과 포스터를 사서 경품으로 내걸었다. 자발적 협찬도 이어졌다. 참가자 전원에게 햄버거, 에그타르트, 트러플 올리브유, 가글액 등 각종 선물을 나눠주며 ‘보랩’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영화 상영 며칠 전 참가자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졌다. 각자 퀸에 대한 추억과 단체관람에 대한 기대감, 일상 잡담을 자유롭게 올렸다. 조홍석씨는 퀸에 얽힌 숨은 비화를 하루 하나씩 올렸고, 사람들은 관련 글과 영상을 가져와 공유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을 짚은 <한겨레> 기사(▶11월9일치 ‘33년 전 퀸 공연장으로…엄마도 딸도 “위 아 더 챔피언~”’)가 화제 되면서 기자도 페이스북 초대 메시지를 받아 대화방에 입성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단체관람 당일인 19일 오후, 영화 시작 전 극장 근처 치킨집에서 조촐한 ‘예열’ 모임이 열렸다. 이번 이벤트를 추진한 운영진과 일찍 올 수 있는 참가자 등 10여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다양한 참가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퀸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록을 싫어했고, ‘위 아 더 챔피언스’도 안 좋아했죠. 그런데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가 성정체성에 대한 공격, 건강 악화 등 최악의 상황에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올라 ‘갖은 어려움을 헤치고 끝내 이긴 우리는 챔피언’이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게 됐어요. 이런 내용의 감상평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결국 오늘 이 자리까지 커지게 됐네요.”(김용권)

“다른 페친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친구들과 <보헤미안 랩소디> 보며 떼창을 하고 싶다’는 글을 봤거든요. 그러던 차에 중 김용권님 글을 보고 ‘우리끼리 난장을 펼쳐보자’ 하며 일을 도모하게 된 거죠.”(장수미)

“극장을 대관하려 하니 단체 이름을 묻더라고요. 그냥 동호회라고 대답하니 동호회명을 물어봤어요.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이질적인 사람들이 한번 모여서 신나게 놀고 헤어지자는 건데, 이름이 굳이 필요할까요?”(김민규)

기자는 이날 단체관람에 앞서 싱어롱 상영을 두 차례 봤다. 한번은 상영관 전체가 공연장이 된 것처럼 달아올랐다. 영화 도입부 이십세기폭스 로고를 배경으로 퀸의 실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연주한 시그널 음악이 흐를 때부터 박수가 터지기 시작해 상영 내내 떼창과 박수,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번째로 싱어롱 상영을 봤을 땐 일반 상영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간혹 소심한 박수 소리만 들렸다. 같은 싱어롱 상영이라 해도 분위기가 극과 극이었다. 편한 사람들끼리 눈치 보지 말고 떼창을 하며 영화를 보자는 제안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중학생 때 퀸 음악을 엄청 많이 들었거든요. 얼마 전 혼자 가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는데, 늦은 시간이어선지 100석 넘는 자리에 열몇명만 앉아 있었어요. 오랜만에 퀸 노래를 다시 들으니 뭔가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르는데, 쥐죽은 듯 고요한 객석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이번 이벤트를 추진하게 됐죠.”(김민규)

“얼마 전 가족들이 싱어롱 상영에 다녀왔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눈치 보느라 적극적으로 부르는 분위기가 아니었나봐요. 내가 오늘 이런 자리에 온다고 하니 가족들이 엄청 부러워하더라고요.”(하현주)

지난 19일 저녁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떼창 단체관람 참가자들이 뒤풀이 자리에서 프레디 머큐리 코스프레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정민 기자
참가자들 중에는 퀸의 열렬한 팬도 있었고, 퀸을 잘 모르는 이도 있었다. 다만 어디선가 퀸 노래 한두 곡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퀸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한 곡쯤은 알고 있다는 점이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고등학교 영어 시간 때 배웠어요. 그땐 퀸인지도 몰랐죠. 유일하게 영어 가사를 다 외운 노래였는데, 영화를 보고서야 퀸 노래임을 알게 됐어요. 이 좋은 노래들이 다 퀸 노래였구나 하며 계속 흥얼거리게 되더라고요.”(장수미)

“중고등학교 때 밴드 하는 친구들이 퀸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그래서 퀸을 알게 됐죠. 음악은 좋아해도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오늘 재밌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왔어요. 울산 간절곶에 새로 생기는 문화공간 총괄기획 일을 맡았는데, 대나무숲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야외상영을 하면서 파티를 열어볼까 해요.”(최윤선)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에서 처음에 금지곡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금기에 대한 도전의 차원에서 들어보고 좋아하게 됐어요. 이 영화를 40대는 추억으로 보고, 20대는 호기심에 보는 것 같아요.”(조수연)

“엄마가 젊었을 때 길거리에서 나온 노래가 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자주 들어온 노래들이 알고 보니 다 퀸이었고요. 퀸 덕에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거 아닐까요?”(하현주)

“퀸이 아니라 메탈리카나 에이치오티(H.O.T.)였다면 달랐을 거예요. 누구나 다 아는 퀸이니까 오늘 모임도 가능했겠죠.”(김민규)

이날 모인 76명은 영화관에서, 또 이어진 뒤풀이 술자리에서 밤을 불살랐다.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낸 콧수염을 붙인 채로 기념사진을 찍고, 술잔을 부딪히며 새벽까지 퀸과 영화 얘기를 이어갔다. 프레디 머큐리 기일인 24일에는 추모 열기까지 더해졌다. 이날 전국 메가박스 엠엑스관 8곳에서 열린 ‘프레디 머큐리 메모리얼’ 상영회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서울 서교동 클럽 에프에프, 경리단길 펫사운즈 바, 이태원 심야식당 시즌2 등에선 밤새도록 퀸 음악 파티가 열리며 불꽃처럼 살다 간 음악인 프레디를 기렸다. 영화 엔딩곡 ‘더 쇼 머스트 고 온’에 응답이라도 하듯 프레디의 쇼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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