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2 14:49
수정 : 2018.11.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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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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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 IMF 협상 실무자 열연 김혜수
“시나리오 속 아이엠에프 협상 진실 알고 분노”
“건물주 꿈꾸는 아이들 가치관에 우리도 책임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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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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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시나리오를 보다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흘러내리는 머리에 핀을 꽂은 뒤 자세를 가다듬고 모르는 용어를 검색해 가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아이엠에프 협상팀 실무자 한시현 팀장 역을 맡은 김혜수는 시나리오를 받았던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영화 개봉을 앞둔 21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국민이 장롱 속 아이 돌반지와 할머니 가락지까지 꺼내 동참했던 ‘금 모으기’로 모인 돈이 결국 대기업 부채를 갚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읽고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김혜수 역시 당시 언론이 떠들어대던 대로 “우리가 분수를 모르고 과소비를 일삼아서”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진 줄로 알았다고 했다. 다소 어려운 작품을 망설임 없이 선택한 이유는 결국 “나도 잘 몰랐고, 관객도 잘 몰랐던 협상의 진실을 뒤늦게나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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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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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한시현은 강박적일 만큼 숫자에 민감하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엘리트다. 어려운 경제용어를 줄줄 읊고,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결과를 신뢰감 있게 전달하는 인물이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을 영어로 말이다. ‘어려운 말을 하면 역정을 낸다’는 영화 속 대통령처럼, 관객도 역정을 낼까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캐스팅 2주 만에 준비에 돌입했어요.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대사를 외워야 하는데다, 영어 연기도 버거울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하나 외우면 하나 잊는 일이 반복됐어요. 바닥인 제 수준에(웃음) 맞게 이해를 도와줄 현직 금융맨에게 강의도 몇 차례 들었죠.” 영어는 선생님 따로 붙여 엄청나게 반복 연습을 했다. “상대인 아이엠에프 총재 역이 세계적인 배우 뱅상 카셀인데다 단순히 대사를 읊는 수준이 아니라 감정을 실어 영어로 연기해야 해 부담도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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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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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뱅상 카셀은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감탄했다. “독특한 카리스마로 ‘한국 영화 현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더라고요. 그런 뱅상 카셀이 시나리오를 읽고 ‘꼭 출연하고 싶다’고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로 영화의 가치와 의미가 증명된 게 아닌가 싶어 자부심도 느꼈죠.”
배우로 이미 활동하던 시기라 아이엠에프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유학하던 지인이 공부를 포기하고 귀국한다든가, 친척이 부도를 맞는 등의 간접경험 정도였다. “제 경험은 당시 국민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래서 배우로서의 욕심보다는 그분들을 위해 정말 잘 만들고 싶었어요.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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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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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객 모두가 한시현에게 감정이입을 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기에 배팅한 윤정학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죠. 저 역시 윤정학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최근 ‘아이들 꿈 1위가 건물주’라는 기사를 봤어요. 아이들에게 각자도생,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을 갖게 한 책임은 그 시대에 무지했거나 그 시대를 방관한 우리에게 있죠. 영화를 찍으며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됐어요.”
이 영화가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어떤 답을 내줄 거라 기대하진 않는다. “상처뿐인 시대를 복기하면서 각자가 했던 선택들, 그 거대한 소용돌이가 바꿔놓은 현 시대와 그 속의 나를 한 번쯤 돌아보길 바라요.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20년의 세월을 반추하는 매개체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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