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2 11:10
수정 : 2018.11.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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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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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유아인·조우진·허준호 주연 <국가부도의 날>
위기를 막으려는자, 이용하는 자, 무너지는 자를 교직
협상 과정에서 무능한 책임자 모습 통렬하게 그려내
도식적 이야기지만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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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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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입니다.”
제목부터 정공법을 택한 <국가부도의 날>(28일 개봉)은 1997년 12월 발생한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상업영화의 틀로 처음 끌어낸 영화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를 넘어서는 참혹한 ‘경제적 재난’에 관한 뒷이야기를 과감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이 작품은 다소 도식적인 구조와 교조적인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봐야 할 영화다. 그로부터 21년,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호황에 관한 뉴스가 연일 쏟아지던 시기,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여러 지표를 취합해 곧 경제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한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팀을 꾸리지만, “국가적 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활동을 비공개에 부친다. 돈의 흐름에 예민한 촉수를 지닌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은 ‘위기가 곧 기회’라며 투자자를 모아 역베팅을 한다. 언론의 장밋빛 경제전망만 철석같이 믿은 작은 그릇공장 사장 갑수(허준호)는 어음을 담보로 한 백화점 납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희망에 부푼다. 한편, 이 기회를 통해 ‘국가 경제의 새 판을 짜겠다’는 속셈을 가진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사사건건 한시현 팀장의 발목을 잡는다. 그사이 한국 경제를 약탈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을 등에 업은 아이엠에프 총재(뱅상 카셀)가 비밀리에 한국에 입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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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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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는 ‘국가부도의 날’을 앞두고 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자, 위기에 베팅해 한몫 잡으려는 자, 위기에 스러지는 자의 모습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해 보여준다. 각 국면에서 네 인물의 선택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를 숨가쁜 템포로 그려낸다.
중간중간 삽입된 당시 방송과 신문기사 등 실제 자료는 현실감을 끌어올린다. 40대 이상 관객은 내내 과거의 잔상이 현재처럼 스쳐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반인이 잘 알지 못했던 아이엠에프와의 협상 과정을 적나라하게 풀어낸 것이 시선을 끈다. 아이엠에프의 가혹한 선결 조건에도 굴욕적인 협상을 이어나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책임자들의 모습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위기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는 기회주의자이지만, 자신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무력한 국가의 모습에 씁쓸해하는 윤정학의 모습에선 묘한 정서적 동질감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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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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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전적으로 기댄다. 한시현 역의 김혜수는 어려운 경제용어는 물론 영어 대사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압도적인 감정연기를 해내는 등 시종일관 영화를 끌고간다. 조우진 역시 비열한 눈빛과 시니컬하고 이죽거리는 특유의 말투로 김혜수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무력한 서민인 허준호의 좌절과 눈물 연기 또한 진한 공감을 자아낸다.
다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인간 군상’을 교차시키며 시대를 훑어가는 방식을 택하기에 필연적으로 각 인물이 전형적일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쉽다. 다소 복잡한 금융용어와 경제지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설명적 장면은 집중도를 흐트린다. 가계부채 폭탄이 째깍거리는 현재를 보여주며 “위기는 반복되기에 과거를 되짚으며 깨어 있으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재차 강조하는 마지막 내레이션도 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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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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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영화가 사회에 던지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경영활동을 빙자한 구조조정과 대량해고가 수월해지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각자도생의 사고가 판을 치는 2018년의 풍경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돌아보고, 닥쳐올 또 다른 위기를 피하기 위한 선택을 고민하도록 하는 것만으로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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