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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24 18:36 수정 : 2018.01.24 23:11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뉴(NEW) 제공

‘부산행’ 연상호 감독 신작
‘좀비’ 이어 ‘초능력’ 소재로
도시개발의 잔인한 이면 짚어

‘연상호 스타일’로 녹여내
할리우드 히어로+한국적 부성애
새로운 ‘여성악당’ 캐릭터도 눈길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지극히 비현실적인 외피에 싸인 지나치게 현실적인 블랙코미디.’

2016년 1156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부산행>에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좀비’라는 소재를 다뤘던 연 감독은 이번에도 ‘초능력’이라는 신박한 소재를 들고나왔다. 하지만 염력이라는 황당하고 초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돼온 도시개발의 잔인한 이면을 짚어내려 한다. 그것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서. 과연 연 감독은 모순적인 여러 요소를 씨줄과 날줄처럼 잘 직조해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뉴(NEW) 제공
10년 전 아내와 딸을 떠나 혼자 사는 은행 경비원 석헌(류승룡)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인 ‘염력’이 생긴다. 석헌의 딸 루미(심은경)는 치킨집을 창업해 씩씩하게 살아가지만,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철거 위기에 몰린다. 이 터에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대형 면세점을 지으려는 건설사 홍 상무(정유미)와 철거업체 민 사장(김민재)은 루미와 이웃들을 쫓아내려 온갖 술수를 쓴다. 석헌은 딸 루미와 이웃들, 그리고 선량한 변호사 정현(박정민)을 도와 건설사 일당의 횡포에 맞서며 상상치 못했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영화는 크게 두개의 큰 줄기로 진행된다. 첫번째는 소시민이었던 석헌이 갑자기 생긴 초능력을 바탕으로 부패한 사회 시스템에 맞서는 ‘정의로운 히어로’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다. 두번째는 가족을 버린 아빠를 원망하는 딸과 화해하고 ‘진정한 부성애’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다. 사실 이 두 줄기는 그간 영화에서 흔히 보아온 낡은 장치다. 첫번째는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전형적 공식이고, 두번째는 한국 영화에서 반복돼온 신파코드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통해 구축해온 ‘연상호만의 색깔’을 덧입힌다.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재개발과 철거민의 싸움은 자연스레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감독은 “도시개발의 문제를 그리기 위해 전형적인 철거민의 모습을 등장시켰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영화는 도로 표지판 등을 통해 끊임없이 용산을 환기한다. 애니메이션 <창>, <돼지의 왕>, <사이비> 등에서 사회문제를 다뤄왔던 연상호 감독이 귀환한 모양새다. 석헌의 염력을 “북한 소행”이라 주장하는 종편을 꼬집는 장면, 홍 상무가 “힘은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들 것일 뿐, 우리는 모두 노예”라고 일갈하는 장면, 자본과 결탁한 공권력의 부패를 드러내는 장면 등도 감독의 ‘칼끝’이 향하는 방향을 명확히 드러낸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서 빛났던 그 날카롭고 잘 벼려진 현실비판의 칼날이 영화에서는 투박하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뉴(NEW) 제공
무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곳곳에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해 무게중심을 잡으려 한다. 후반부에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는 석헌의 모습도 등장한다. 영화지만 만화와 같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 쏟아진다. 라이터를 움직이고 종이컵을 구기는 것에서 시작해 자동차와 건물까지 들썩이게 하는 장면의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만점은 아니라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모든 상상력과 기술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히어로 무비’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미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등장인물 중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특별출연한 정유미가 연기한 홍 상무다.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처한 황당한 상황 앞에 박장대소를 하는 홍 상무는 이 영화의 ‘만화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 악당의 모습이 반갑다.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의 흥행 덕에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염력>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모쪼록 적당한 경멸과 적당한 존중을 받으며 생명력 있게 살아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감독도 이미 알고 있듯 <염력>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영화다.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이 있는 반면, 허탈함과 황당함의 실소를 터뜨리는 관객도 있을 터다. 분명한 건 대중적인 코드로 중무장했던 <부산행>보다는 다소 어설프지만 번뜩이는 시각이 드러나는 <염력>이 ‘본래의 연상호 스타일’에 더 가까운 영화라는 점이다. 31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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