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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4 05:00 수정 : 2017.12.05 11:51

웹툰을 원작으로 한 주요 영화들에서 연기한 배우들. 이병헌은 900만명 관객 동원한 <내부자들>에, 하정우는 대작으로 만들어진 <신과 함께>(20일 개봉) 에 출연했다.

【100℃】영화와 웹툰의 콜라보

영화화 작업 늘어나는 웹툰 원작들
‘강철비’, ‘신과 함께’ 등 대작 겨울시장 겨냥

잘 짜인 스토리·경제성 강점이지만
대중성 확보·각색 부담 ‘양날의 검’

웹툰 업체서 영화제작 뛰어들거나
마블·디시처럼 세계관 공유하는
‘슈퍼스트링 프로젝트’ 시도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주요 영화들에서 연기한 배우들. 이병헌은 900만명 관객 동원한 <내부자들>에, 하정우는 대작으로 만들어진 <신과 함께>(20일 개봉) 에 출연했다.
골목마다 만화방과 만화 대여점이 넘쳐나던 시절, 만화는 ‘아이들의 쓸데없는 취미’ 정도로 취급받았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낡은 만화책은 사는 것이 아니라 빌려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시기가 길어지면서 만화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열리자 그 위기는 도리어 ‘기회’로 바뀌었다. 새로운 형태의 만화인 ‘웹툰’의 등장 때문이다. 이제 웹툰은 지식재산권 (IP·Intellectual Property)라는 단어를 등에 업고 ‘신산업’으로 탈바꿈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즉 웹툰을 재가공한 다양한 ‘2차 창작물’ 생산이 이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웹툰과의 콜라보레이션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 중 하나는 영화다. 웹툰의 영화화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리고 인터넷을 넘어 스크린까지 넘보는 웹툰의 기세는 올 연말, 정점을 찍었다. 영화계의 가장 핫 시즌인 겨울 시장에 웹툰 기반 영화 세 편이 한꺼번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사실 웹툰 기반 영화들의 역대 흥행 성적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웹툰을 향한 영화계의 러브콜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웹툰과 영화의 합작은 과연 어느 수준까지 발전했을까?

■ 10여년 이어진 ‘웹툰의 영화화’는 현재진행형 초창기 웹툰의 영화화를 이끈 작가는 강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웹툰 기반 영화인 공포물 <아파트>(2006)는 조회수 1000만 이상을 기록한 강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바보>, <순정만화>(2008) 등 강풀의 웹툰이 잇달아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세 작품 모두 100만명을 넘지 못하는 등 흥행은 시원치 않았다. 2010년 윤태호 작가의 원작을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한 <이끼>가 34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처음으로 웹툰 기반 영화의 시장성을 입증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강풀 원작 <26년>(2012·296만여명)은 흥행 면에서는 기대를 밑돌았지만, 한국 영화의 소재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격적인 흥행몰이에 성공한 것은 작가 Hun(최종훈)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다. 당시 최고 주가를 올렸던 배우 김수현의 인기를 바탕으로 69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어 2015년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각색한 <내부자들>이 900여만명(감독판 포함)을 동원하며 역대 웹툰 원작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웹툰의 영화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겨울 시장을 겨냥한 3편의 웹툰 기반 영화가 관객 공략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노인 범죄 스릴러 <반드시 잡는다>는 제피가루 작가의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가 원작이다. ‘21세기형 스크루지’ 심덕수(백윤식)와 은퇴 형사 박평달(성동일)이 30년 전 미제살인 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뼈대로, 그 안에 노인혐오·고독사 같은 사회문제를 녹여냈다.

14일 개봉하는 <강철비>는 원작 웹툰 <스틸 레인>의 작가 양우석 감독이 직접 연출했다. 웹툰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나흘 동안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영화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는 설정 하에 한반도에 불어닥친 핵전쟁 위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첩보 액션물이다. 양 감독은 영화 내용을 담은 속편 격인 웹툰 <강철비>도 연재 중이다.

20일 개봉하는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바탕으로 한다. 사후 49일간 칠지옥을 지나며 생전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는 망자와 안내자인 저승차사들 이야기다. 원작은 연재 당시 웹툰 조회 수 1위를 기록했고, 단행본만 45만부 이상 판매됐다. 사후세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탁월하고, 권선징악의 주제 속에 휴머니즘을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 웹툰, 양날의 검, 그러나 무궁무진한 가능성 그간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들의 흥행성적을 살펴보면 성공확률은 50%를 밑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웹툰 기반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찌질의 역사>, <여중생A>, <치즈 인 더 트랩>, <청소부 K> 등이 영화로 제작 중이거나 제작 예정이다. 낮은 성공확률에도 불구하고 웹툰의 영화화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웹툰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잘 다듬어진 스토리 때문이다. <반드시 잡는다>를 제작한 AD406의 차지현 대표는 “소재 고갈로 인해 점차 획일화 되는 한국 영화에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넘치는 웹툰이 이야기 공급원이 되고 있다”며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역량 있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웹툰은 앞으로도 영화의 소재 발굴을 위한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기 웹툰은 이미 ‘검증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 제작의 위험성을 상쇄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마블이나 디시(DC)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검증된 콘텐츠라는 믿음 때문이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소설 등 활자 매체와 달리 웹툰은 이미 일정 부분 시각화가 진행돼 있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신과 함께>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소설보다는 웹툰을 볼 때 훨씬 더 시각적인 영감을 많이 받는다.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어떻게 구현할지 감이 빨리 오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자신감도 훨씬 많이 갖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보다 웹툰의 판권을 사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도 작용한다.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전 편집장이자 영화평론가인 김봉석씨는 “윤태호·강풀 등 일부 유명 작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웹툰은 판권이 수천만원대에 불과해 보통 억대에 달하는 영화 시나리오 개발비용에 견줘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저렴한 가격에 견줘 이미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가 완성된 웹툰이 제작사나 감독에게는 더 편리하고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역대 웹툰 원작 개봉영화들의 흥행성적.
하지만 웹툰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덕에 홍보나 마케팅에 유리하지만 조금만 각색을 잘못해도 팬들에게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원작과 아예 똑같아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며 외면을 당할 수 있다.

호흡이 길어 캐릭터나 배경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웹툰과 달리 영화는 2시간 이내로 모든 내용을 압축해야 하는 것도 큰 차이다. 독자 연령대가 10~30대로 한정적인 웹툰과 달리 영화는 관객층이 훨씬 다양하다는 것도 변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웹툰은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처음부터 보면 되지만, 영화는 불가능하다. 웹툰의 문법과 영화의 문법이 다른 이유”라며 “또 웹툰은 마이너한 부분이 있어도 독자층이 젊어 이해도가 높지만, 영화는 훨씬 더 대중적으로 연출해야 한다. 이런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웹툰 원작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 영화와 웹툰의 콜라보로 ‘한국판 마블’ 탄생할까? KT경제연구소는 올해 국내 웹툰 시장이 5800억원 규모에 이르고, 2020년에는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이 성장하고 2차 창작물의 경제적 이익도 커지자 웹툰 플랫폼 업체들도 영화화 작업에 직접 나서고 있다.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는 김보통 작가의 <디피 개의 날>을 다이스필름과 영화로 공동제작 중이다. <디피 개의 날>은 ‘탈영병 잡는 군인’의 시선을 통해 군대에서 탈영까지 몰리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그들이 바라는 사회를 우회적으로 그려내 공감을 얻었다. 레진은 또 직접 제작한 독립영화 <밤치기>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해 정가영 감독이 ‘비전 감독상’을, 박종환 배우가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강경일 영상사업부장은 “<밤치기>는 자체 제작역량 강화를 위한 첫 시도였는데 좋은 성과를 거둬 기쁘다”며 “앞으로 단독제작을 포함해 레진의 웹툰 콘텐츠의 영상화 사업에 더 힘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웹툰 플랫폼 탑툰을 운영하는 탑코 역시 드라마·영화 제작법인 ‘이야기동맹’을 설립했다. 탑코가 보유한 순수 웹툰 700여개를 분석해 영상화가 가능한 작품을 선별한 뒤 작가·감독 등을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웹툰 제작사 와이랩, 네이버 웹툰, 영화 <올드보이>와 <아가씨> 등을 제작한 용필름은 세계 최초 웹툰 유니버스인 ‘슈퍼스트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할리우드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디시 익스텐디드 유니버스’처럼 하나의 세계관 아래 여러 웹툰을 연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심연의 하늘>의 조연으로 등장했던 테러리스트가 <테러맨>에선 주인공인 식으로, 와이랩이 제작한 웹툰의 캐릭터를 각각의 작품에 교차해 등장시키며 슈퍼스트링스라는 하나의 웹툰 유니버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와이랩은 이미 지난 2016년부터 <테러맨>을 시작으로 <부활남>, <심연의 하늘 시즌4>, <아일랜드 2부> 등 슈퍼스트링 작품을 연재해왔다. 와이랩이 웹툰을 연재하면 네이버 웹툰은 이 웹툰을 모아 슈퍼스트링 전용관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2차 사업을 펼치고, 용필름은 이를 시리즈 영화로 만들게 된다.

와이랩 윤인완 대표는 “‘초끈 이론’에 기반해 서로 다른 시대와 세계에 사는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는 설정이다. 한국형 히어로 캐릭터를 만든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 회사는 공동 자회사 스튜디오 와이를 만들고, 스토리실에서 웹툰을 영화적 문법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임승용 용필름 대표는 “영화는 스크린용 시리즈물로 제작된다. 첫 작품은 <부활남>과 <테러맨> 중 한 작품일 듯하다”며 “스토리 정리가 끝나는 대로 전문 작가를 붙여 시나리오 작업을 해 내년 안에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하고, 2020년께 첫 작품을 개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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