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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5 11:02 수정 : 2017.11.05 19:13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커닝’ 소재 타이 영화 ‘배드 지니어스’

케이퍼 무비·시험 부정 절묘한 조합
째깍째깍 초침 소리 만으로도 심장이 쫄깃
붕괴한 교육 시스템 이용하는 아이들의 도발
아시아 5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 돌풍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2017년 11월16일.’ 관공서와 기업체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버스·열차가 경적을 울릴 수 없으며, 항공기 이착륙마저 금지되는 아주 특별한 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일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이즈음, 수험생이라면 한번쯤 상상해보는 것이 바로 ‘커닝’(시험 부정행위) 아닐까. 커닝을 소재로 한 타이 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입시지옥’이라는 통과의례를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가난한 천재 린(추띠몬 쯩짜른숙잉)은 교사인 아버지의 성화에 학비가 비싼 명문고로 전학을 온다. 전학 첫날 만나 절친이 된 그레이스(이사야 호수완)가 수학 성적 때문에 고민하자 린은 시험 당일 지우개에 답을 적어 건넨다. 하지만 바늘도둑이 결국 소도둑 되는 법. 그저 친구에 대한 작은 호의에 불과했던 소소한 부정행위는 그레이스의 남자친구이자 금수저인 팟(티라돈 수파판핀요)과 그 무리가 가세하며 현금이 오가는 대작전으로 확대된다. 린은 네 가지 피아노 선율을 연주하는 손가락 모양과 사지선다형 정답을 연결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팟 무리의 커닝을 도우며 돈을 번다. 그러나 린의 경쟁자인 바른생활 소년 뱅크(차논 산띠나톤꾼)의 고자질로 린은 미국 유학을 위한 장학금 수혜 자격을 잃게 된다. 팟과 그레이스는 린에게 미국 대학입학시험의 답을 알려주는 대가로 거액을 지불하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하고, 린은 더 정교한 필승 작전을 위해 뱅크를 끌어들이려 한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배드 지니어스>는 케이퍼 무비(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영화) 장르에 고등학생들의 시험 부정행위라는 소재를 절묘하게 버무린 재기발랄한 영화다. 시험지가 놓인 작은 책상과 시험을 치르는 교실 같은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특수효과 하나 없이도 째깍째깍 초침 소리, 오엠아르(OMR) 카드를 마킹하는 연필 소리, 정답을 알려주기 위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 등의 음향효과만으로 긴장감과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시험 종료 5분 전을 알리는 시계 분침과 땀에 젖은 린의 얼굴, 샤프심을 교체하는 떨리는 손가락 등을 빠르고 경쾌하게 교차시키는 편집 방식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락적 요소가 넘쳐나지만 영화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뒷돈을 요구하는 썩어빠진 학교, 가장 공정해야 할 성적마저 돈으로 사는 붕괴된 교육 시스템, 한국에서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계급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꽤나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이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도 상당 부분 오버랩 된다. 커닝이 나쁜 짓임을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린의 부정행위가 들킬까 함께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똑똑하지만 가난한 한 소녀가 불의한 시스템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타이는 물론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을 평정하며 5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옹박>류의 액션영화나 <셔터> 같은 공포영화로만 알려졌던 타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될 듯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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