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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7 18:16 수정 : 2017.09.27 21:43

영화 <남한산성>.

리뷰 / 영화 ‘남한산성’

영화 <남한산성>.
100쇄를 찍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소설은 산성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말의 전투’를 그리는데 이게 스크린에서 어떤 스펙터클로 구현될까. 다른 하나는 여지없는 패배의 기록이 상업영화 틀 안에서 관객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까.

<도가니>,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은 돌아가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는 정공법으로 묵직하면서도 기품있는 이야기의 성을 세워 올렸다. 영화는 산성 앞에 진을 친 청나라 부대 앞에서 사신으로 선 최명길(이병헌)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한다. 다음 장면에서는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에 뱃사공을 만나 적군에게 길을 인도하겠다는 그를 칼로 베는 김상헌(김윤석)이 등장한다. “치욕은 견딜 수 있지만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의 외침과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겠다”며 항전을 주장하는 김상헌의 결기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것임을 선명히 내보인다.

영화 <남한산성>.
영화는 실제로 2시간20분의 상영시간 동안 옆길로 새지 않고 치열하고 팽팽한 말의 전투를 보여준다. 산성 안 행궁 등 주요 무대의 연출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갈수록 숨통을 조여오는 청의 압박과 이로 인해 치열해지는 갈등은 온전히 주요 인물들의 얼굴과 입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싸우려는 자와 멈추려는 자, 그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자들의 넘치는 말 속에서 왕(박해일)은 길을 잃어가고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사신을 통해 위협하는 말의 수위가 올라가며 극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영화 <남한산성>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대사들의 향연에 스크린은 온도를 입힌다. 그 온도는 온기가 아니라 추운 냉기다. 어전에서 다투는 인물들의 펄펄 끓는 말의 열기가 무색하게 인물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계속해서 나온다. 바깥 장면에서 인물들의 수염 위에는 언제나 허연 성에가 끼어 있고 백성들 역시 추위로 인해 고통받거나 죽어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해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는 프롤로그 문장처럼 물리적 추위와 고립무원에서 느끼는 지독한 두려움이 서늘하고 냉랭한 화면을 통해 관객의 옷깃까지 스며든다. 싸늘한 기운은 전투 장면에서 극대치가 된다. 차마 전투라고도 부르기 힘든 옹색하고 처참한 몇번의 싸움에는 여지없이 눈이 내린다. 창백한 눈발 아래서 변변치 않은 장비와 체력으로 청군에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군사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영화 <남한산성>.

영화는 김상헌의 마지막 선택 정도를 제외하고는 마지막까지 원작의 큰 얼개를 벗어나지 않는다. ‘삼전도의 굴욕’까지 격서를 전하는 날쇠(고수)의 분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야기의 곁가지 없이 묵묵히 앞으로 간다. 극적인 반전이나 뭉클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헛헛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긴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은 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 덕이다. 사극 첫 연기라는 게 안 믿어질 만큼 능수능란한 김윤석과 조선에서 가장 무능한 임금으로 일컬어지는 인조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하는 박해일, 그밖의 모든 배우들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연기로 영화를 든든히 받친다. 특히 ‘주화파’로 낙인찍혀 훗날까지 비난받은 최명길의 고뇌와 진심을 오로지 대사와 눈빛으로만 설득해낸 이병헌의 연기는 찬사만으로 모자랄 지경이다. 15살 관람 가. 10월3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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