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7 17:16
수정 : 2017.09.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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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한 진모영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서교동 작업실에서 ‘디엠지(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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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내놓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DMZ영화제 개막작 ‘올드 마린보이’
가족 위해 사선 넘고 또 부양하려
바다서 물질하는 박명호씨 재조명
촬영중 아버지 돌아가셔서 더 몰입
“나도 독립피디 출신, 처우 논란 착잡
방송국, 창작자에게 저작권 돌려줘야…
내가 잘하는 휴먼다큐 계속 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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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한 진모영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서교동 작업실에서 ‘디엠지(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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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마린 보이> 포스터. 디엠지국제다큐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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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마린보이>라니? 제목만 들었을 때는 ‘수영선수’에 관한 영화인가 싶다. 21~28일 ‘디엠지(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는 2014년 관객 480여만명을 끌어모으며 ‘한국 다큐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47)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첫 느낌과 달리 이 영화는 탈북자 출신 ‘머구리’(잠수를 뜻하는 일본어 모구리에서 비롯됨) 박명호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디엠지 영화제 개막을 앞둔 15일 진 감독을 서울 서교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우리 작업이 젖소랑 같아요. 새끼를 가져야 우유를 내놓는 젖소처럼, 계속해서 프로젝트(영화)를 기획해야 생계가 유지가 돼요. <올드마린보이>는 <님아>의 후반 작업을 진행하던 2013년 11월에 기획했어요. 바람 쐬러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통영에 가다가 여행잡지에서 머구리에 관한 기사를 봤어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고무장갑을 낀 머구리 사진에 넋을 잃었죠.” 가족을 먹여 살리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잠수병에 걸려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머구리에 관한 기사는 그에게 ‘인생’에 관한 새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기사 속 머구리는 병세가 악화돼 투병을 하느라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상태였다. 수소문 끝에 탈북한 머구리 박명호씨를 알게 됐다. “영화 찍자고 하니 단칼에 ‘싫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미디어에 이미 노출이 많이 된 분이었거든요.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해보자’고 설득을 했어요.”
진 감독은 ‘탈북자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한 머구리’로 소개된 박명호씨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가족을 위해 사선을 넘은 박명호씨는 남한에 와서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바다로 들어가요. 목숨을 걸고 생사의 경계를 넘은 사람이 매일매일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일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09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박명호씨는 남과 북의 국경 마을인 강원도 고성군에서 머구리로 살아간다. 큰 투구, 납 벨트, 쇠로 된 신발까지 60㎏이 넘는 장비를 장착하고 가느다란 공기 호스 하나에 의지해 수십미터 아래 바닷속을 헤엄쳐 해산물을 채취한다. “영화 속에서 그가 말하죠.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생존을 위해 투쟁할 때’라고. 그에게 ‘생존’이란 가족부양인 셈이에요.”
영화의 제목 <올드마린보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글로 표현하자면 ‘아버지의 바다’, 한문으로 하면 ‘고해’(苦海)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욱더 아버지라는 키워드에 몰입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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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마린 보이>의 한 장면. 디엠지국제다큐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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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청진 앞바다를 헤엄치던 한 소년이 남한에 와서 마린보이(잠수부)가 됐고, 점점 늙어간다. 그는 과연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영화는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이방인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남북통일의 이야기까지 포괄한다”며 “관객들도 이 세 가지 지점을 모두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진 감독은 말했다.
최근 수많은 다큐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데는 진 감독의 전작 <님아>의 영향도 크다. <님아>는 다큐도 극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저는 스스로를 ‘워낭소리 키드’라고 불러요. 293만여명이 관람한 <워낭소리>는 제게 다큐영화를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줬어요. 앞으로 ‘님아 키드’도 만들어지겠죠. 그렇게 독립영화의 지평이 넓어지길 바라요.”
하지만 다큐 전성시대가 기쁨만 주는 것은 아니다. 독립프로덕션 피디로 원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진 감독이기에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촬영 중 숨진 박성환·김광일 피디 사건으로 촉발된 ‘독립다큐 피디 처우 논란’이 착잡하기만 하다. “제가 그런 표현을 해요. ‘씨받이’ 같다고. 애 낳아주고 조그만 보따리 하나 싸서 떠나고, 다시는 아이를 볼 수도 없고, 아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씨받이. 열심히 프로그램 만들었더니 몇 푼 쥐여주고 방송국이 저작권까지 다 가져가잖아요. 바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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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마린 보이>에 출연한 박명호(왼쪽 두번째)씨와 가족들. 디엠지국제다큐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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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의 기록적인 성공은 그에게도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우선 투자와 배급 부분에서 좀더 수월해졌죠. 이건 강계열 할머니, 조병만 할아버지가 제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해 감사히 여기고 있어요. 시기, 질투도 받곤 하지만요. 하하하.” 강계열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설·추석 명절, 할머니 생신, 할아버지 제사 때는 꼭 찾아뵙죠. 횡성시내 아파트에서 딸·사위와 살고 계시는데, ‘뜨거운 물 펑펑 나와 좋다’고 하세요. 하하하.”
영화 안과 밖에서 동일하게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대하는 진모영 감독이기에 그의 렌즈는 늘 ‘사람’을 향한다. “다큐는 특별하거나 독특한 사람의 삶 속에서 인간의 공통적 감정을 끌어내는 작업이에요. 소재의 신선함으로 시선을 끌되, 그 안에서 우리네 삶의 보편성을 깨닫게 하는 것. 저는 앞으로도 제가 잘하는 휴먼다큐를 계속할 것 같아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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