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07 10:48
수정 : 2017.09.0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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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커넥트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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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58만여명 끌어 모은 ‘귀향’ 속편 14일 개봉
웃음+눈물 장착 상업영화 ‘아이 캔 스피크’도 뒤이어
‘귀향’은 정공법…‘아이 캔…’은 우회적 접근 돋보여
관부재판 실화 담은 김희애 주연 ‘허스토리’ 제작 중
평론가 “위안부 합의 분노…‘귀향’의 성공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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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커넥트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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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낮은 목소리2>(1997), <숨결-낮은 목소리3>(1999),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7), <그리고 싶은 것>(2013), <마지막 위안부>(2014), <소리굽쇠>(2014), <눈길>(2015)….
지금까지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다. 영화계는 그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막론하고 이 문제를 중요한 화두로 삼아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12·28 합의’와 계속되는 일본의 역사부정에서 보듯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에만 5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듯, 올가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 두 편이 나란히 스크린에 걸린다. 전혀 다른 영화적 문법으로 풀어낸 두 편의 영화가 끝나지 않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달래고,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위안부 문제 정면으로 응시한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난해 2월 개봉해 358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귀향>의 후속편 격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오는 14일 관객을 찾아온다. 제목에서 보이듯 이번 작품은 본편에서 다 담지 못했던 촬영 장면들과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합쳐 만든 작품이다. 약 4시간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개봉 당시 러닝타임 제약(127분)으로 인해 편집해야 했던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일본군 때문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소녀 지희를 연기한 배우 박지희가 현시대에서 영화 삽입 음악인 ‘아리랑’을 녹음하고 부르는 과정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교차 편집된 점도 눈길을 끈다. 주인공 정민(강하나)과 동료 위안부들의 사연이 더욱 절절히 다가온다. 더불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은 왜 이 문제에 ‘시효’가 있을 수 없는지 깨닫게 한다.
조정래 감독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나 예술작품은 한 해에도 수십 편씩 꾸준히 제작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가 독일의 만행을 잊지 않고 독일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과하는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본편을 10개국 61개 도시에서 순회 상영한 조 감독은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역시 전 세계 순회 상영을 기획하고 있다.
■ 우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상업영화 <아이 캔 스피크>
<귀향…>이 위안부의 처절한 참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면,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는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현실과 아픔을 웃음과 감동을 적절히 배합해 풀어낸다. 고통스러워 때론 외면하고 싶은 역사의 상처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휴먼스토리’로 풀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일본에 사과를 촉구하는 ‘미 의회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 청문회’를 모티브로 한다.
365일 구청에 온갖 민원을 넣는 나옥분(나문희)이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를 만나고, 그에게서 영어를 배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영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영화 초반에는 티격태격하는 옥분과 민재,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시장과 구청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가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옥분이 영어를 꼭 배우려 했던 이유가 밝혀지면서부터 영화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특히 일본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는 마지막 옥분의 ‘연설’ 장면은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사죄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제목인 ‘아이 캔 스피크’의 이중적 의미를 깨닫게 되고, 이는 어떠한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김현석 감독은 “<귀향…>이 정공법이라면 우리 영화는 우회적이다”라며 “코미디와 메시지가 물과 기름처럼 되지 않도록 연출하는데 힘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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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 롯데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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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계속될 위안부 소재 영화들
김해숙·김희애가 주연하고 민규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허스토리>도 최근 제작소식을 전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23회에 걸쳐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법정 투쟁을 벌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김희애가 원고단을 이끄는 강인한 단장을, 김해숙이 용기 있는 증언을 한 위안부 생존자를 연기한다. 민규동 감독은 “제목에서 보듯 남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역사적 기록을 뜻하는 ‘히스토리’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써내려가는 ‘허스토리’를 통해 집단의 고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별 여성들의 생생한 아픔을 다루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영화 <군함도>의 제작사 외유내강도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환향>을 기획하고 있다. 송혜교와 고현정이 출연 제의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정지욱 평론가는 최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제작이 늘고 있는 데 대해 “박근혜 정부의 12·28 합의로 인한 국민적 공분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더 높였고, 영화계 역시 지난해 <귀향>의 성공으로 다소 무거운 주제인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도 충분히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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