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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5 14:00 수정 : 2017.09.05 19:47

첫 장편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를 선보인 문소리씨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터뷰]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감독 문소리
자전적 이야기 담은 3편의 단편 엮어
‘여배우-생활인-예술인’으로서의 모습 담아
“둘째 낳는 엄마처럼 또 연출할수도”

첫 장편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를 선보인 문소리씨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소리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지~”

그렇다. 문소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18년차 연기파 여배우다.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년) 여주인공으로 낙점돼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2년 뒤 <오아시스>로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거머쥐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로도 <바람난 가족>, <가족의 탄생>,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하하>, <아가씨>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써내려가며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과연 스크린 밖 문소리도 그렇게 화려하기만 할까?

문소리가 자전적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14일 개봉)를 들고 관객을 찾아왔다. 각본, 감독, 주연까지 ‘1인3역’을 소화하는 열정을 불태웠다. 4일 오후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문소리와 마주 앉았다. 한껏 들떠 보이는 그는 감독 데뷔 소감을 묻자 “영화와의 관계가 한층 더 끈적하고, 진하고, 깊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진학해 만든 세 편의 단편을 묶어낸 작품이다. “2011년 딸 연두를 낳은 뒤 울면서 모유 수유를 끊고 촬영장에 갔어요. <스파이>도 찍고 <관능의 법칙>도 찍고…. 근데, 그 뒤 작품 제안이 뜸하더라고요. 육아도 힘들어 몹시 지쳤어요. 그때 ‘평생 영화를 할 텐데, 내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을 점검해보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한 거죠.” 이 작품은 결국 영화에 대한 문소리의 사랑 고백인 셈이다.

첫 장편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를 선보인 문소리씨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 편 묶음이지만, 영화는 ‘문소리의 오늘들’이 촘촘히 연결된 듯 완결성을 갖는다. 1막은 ‘여배우 문소리’, 2막은 ‘생활인 문소리’, 3막은 ‘예술인 문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실제인 듯, 실제 아닌, 실제 같은’ 문소리의 일상이 때로는 빵 터지는 블랙코미디로, 때로는 코끝 시큰한 감동으로 씨줄날줄처럼 엮여 든다. “내용은 픽션이지만 100% 진심이에요. 제 날것의 경험은 아니지만, 살면서 느꼈던 감정, 겪었던 상황을 적절히 직조해 낸 셈이죠.”

영화 속 ‘여배우 문소리’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 노릇 하느라 24시간이 모자라는 40대 워킹맘이다.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쥔 그지만, 요즘은 배역 제의가 뜸해 고민이다. 찌질한 일상은 그를 짓누른다. 친정엄마의 임플란트 할인을 위해 풀 메이크업을 하고 치과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추가대출을 받으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은행에 간다.

영화계에서 제법 알려진, 그를 둘러싼 ‘소문 혹은 진실’도 엿보인다. 자기객관화가 돋보이지만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다. “부담이라면 부담이지만, 재미라면 또 재미죠. ‘얼마큼 진짜일까?’ 짐작하는 것도 관객에겐 흥미롭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영화에는 문소리가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데뷔 초에 받은 ‘안 예쁜 여배우’라는 평가를 빗댄 듯 보인다. “이창동 감독님이 ‘너는 배우 할 만큼 충분히 예쁜데,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예뻐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하하하. 배우니까 외모 당연히 신경 쓰이죠. 하지만 외모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나머지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해야죠. 요즘은 책을 읽어도 ‘품위’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와요. 품위가 필요한 나이일까요?”

“그러니까 민노당이지”라는 영화 속 대사가 상징하듯, 그에게는 ‘정치적’이라는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정당에 가입한 여배우도 몇 없지만, 그걸 밝힌 것도 제가 처음일걸요? 좀 빨랐던 거죠. ‘여자는 목소리 크면 별로다’라는 관습적 시각도 싫었던 듯해요. 필요하면 정치적 견해를 밝히겠단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예요.”

영화에는 남편 장준환 감독도 살짝 등장한다. 연출에 대해서는 어떤 조언을 했을까? “제가 현장 경험은 그분보다 훨씬 많거든요? 하하하. 어떤 조언도 없었어요. 최종 편집본 보여주니 ‘처음치고는 괜찮네요’ 이러더군요. 기술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엔 불만도 제기하고요. 저예산 영화라 돈이 없어 그런 건데. 남편이 지금 <1987> 찍고 있는데, 아마 제가 쓴 제작비, 하루 만에 쓸걸요?”

‘감독 겸 배우 문소리’가 더욱 반가운 것은 최근 충무로에 ‘여배우 영화’가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여배우로 사는 게 녹록지 않죠. 하지만 호시절이 아닌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봐요. 배가 터지게 부른 것보단 살짝 허기진 게 건강한 법이죠. 상황이 나쁘면 궁리를 하고, 그게 변화의 계기와 동력이 돼요. 할리우드 여배우 리스 위더스푼 보세요. 아예 제작까지 하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영화판이 제 직장인 셈이니, 직장이 튼실해지도록 고민해봐야죠. 제 월급만 나온다고 다가 아니잖아요. 이번에 너무 힘들어 ‘두 번 다시 하나 봐라’ 했는데…. 엄마들이 그런 말 하곤 또 둘째 낳잖아요? 하하하.” 최근 영화감독들이 단편영화 만드는 과정을 담는 한 종편 예능의 엠시(MC)를 맡은 것도 독립영화 제작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픈 바람에서다.

18년을 하고도 연기가 지겨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되레 굶주림은 더 심해졌다. “아직 봉준호 감독이랑 작품 못 해봤고, 장준환 감독과도 제대로 못 해봤어요. 박찬욱 감독과는 너무 짧게 해서 다시 하고 싶어요. 멀리는 우디 앨런과 프랑수아 오종 감독도 남아 있네요. 하하하.” 문소리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진행형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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