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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4 14:47 수정 : 2017.09.04 20:34

‘군함도-역사왜곡’·‘VIP-여혐’·‘청년경찰-조선족 비하’
영화 내용 논란 휩싸이며 관객외면·별점테러 당해
‘불한당’·‘아빠는 딸’ 등 영화 외적 논란에 곤욕 치러

‘옥자’·‘택시운전사’는 외곽 논란이 되레 흥행 촉매제
“표현의자유 억압하고 창작자 자기검열 부추겨” 우려
“시각의 다양성·관객의 비판적 안목 높아진 것” 반론

“논란은 영화를 살리는가, 죽이는가?”

올해 한국 영화계는 기대작을 둘러싼 각종 ‘논란’으로 뜨거웠다. 어떤 논란은 평단의 혹평은 물론 흥행에까지 결정적 타격을 미치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떤 논란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흥행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창작자의 자기검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다른 쪽에서는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중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작품을 살리기도 때론 죽이기도 하는 영화계 논란을 되짚어본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 “바보야, 문제는 내용이야” 가장 큰 논란은 대부분 영화의 내용에서 촉발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함도>다. <군함도>는 류승완이라는 스타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황정민·소지섭·송중기 등 톱스타가 포진한 영화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개봉 초반부터 불거진 ‘역사 왜곡 논란’은 220억짜리 거대 프로젝트를 단숨에 침몰시켰다. 영화 속 친일파에 대한 묘사와 일부 대사가 ‘식민사관’에 근거한 것 아니냐는 주장과 함께 군함도의 처절한 현실이 미화됐다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2000여개가 넘는 스크린 확보 탓에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해묵은 논쟁마저 불거졌다. 류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철저히 고증을 받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결국 <군함도>는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65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누아르의 장인’으로 불리는 박훈정 감독의 신작 <브이아이피>는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 속에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는 데다 대부분이 희생자 역할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묘사가 지나치게 자세하고 잔혹할 뿐 아니라 노출 수위 역시 부적절하다며 “강간 포르노에 가깝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터져 나오며 ‘별점 테러’가 이어졌다. 박 감독은 “젠더적 감수성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자체 검열이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브이아이피>는 2일 기준 131만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쳐 손익분기점인 300만명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내용에 대한 논란이 꼭 흥행참패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청년경찰>은 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조선족 비하 논란’에 휘말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수사를 하는 중국 동포 밀집 지역 ‘대림동’이 범죄자소굴인 것처럼 비친 데다 중국 동포가 범죄의 핵심인 것처럼 묘사됐다는 이유다. 재한동포총연합회 등 30여개 단체는 대책위를 꾸리고 영화 제작사 등을 상대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청년경찰>은 관객 수 537만여명(2일 기준)을 기록하며 여름 시장의 다크호스가 됐다.

한 영화 홍보사 대표는 “앞서 <황해>, <신세계>, <차이나타운> 등 다수의 영화에서 조선족 범죄 묘사가 상당수 있어 대중 다수가 <청년경찰>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던 듯하다”며 “한편으론 조선족이 우리 사회 주류가 아니라서 논란의 확산이 더뎠던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 <불한당>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때로 밖에서 분 태풍이 더 강해” 내용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외적 논란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지난 5월 개봉한 <불한당>은 변성한 감독이 에스엔에스에 올린 글이 문제가 돼 철퇴를 맞았다. 변 감독은 “데이트 전에는 홍어 먹어라. 향에 취할 것이다”, “대선 때문에 홍보가 되질 않는다. 대선을 미뤄라”는 등의 글을 트위터에 올려 대중의 반감을 샀다. 4월 개봉한 <아빠는 딸>은 주연배우 윤제문의 음주 인터뷰 논란 등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두 영화는 각각 93만여명과 64만여명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영화 <아빠는 딸>의 한 장면.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하지만 영화 밖 논란이 되레 흥행을 견인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넷플릭스가 600억을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불붙은 ‘극장-넷플릭스 동시 상영’ 논란이 국내로까지 이어졌지만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멀티플렉스 3사가 상영을 거부해 예술영화관 등 111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옥자>는 좌석점유율 40~50%를 기록하며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관객들은 특히 <옥자>의 상영거부를 “멀티플렉스의 횡포”로 규정하고 공분했다. <옥자>는 32만명(넷플릭스 가입자 제외)이 넘는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영화 <옥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둘러싼 ‘논란’도 또 하나의 사례다. 영화 개봉 뒤 전두환씨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언론을 통해 5.18을 폭동이라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운운해 대중의 분노를 샀다. 이어 4월 출판된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법원이 “5·18을 왜곡하고 비하했다”며 출판·배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 두 사건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부채질했고, <택시운전사>는 올해 첫 1000만 영화에 등극했다.

정지욱 평론가는 “각종 논란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가지게 됐다는 방증이며,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그만큼 비판적 안목도 높아졌다는 뜻”이라며 “지난해 <곡성>이 해석에 관한 논란을 일으키며 흥행한 것에서 보듯 해석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영화를 만들면 관객은 그에 맞는 논쟁을 할 준비가 이미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표현의 자유 위축 등과 같은 피해의식에 휩싸이기보단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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