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30 11:52
수정 : 2017.08.3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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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녕 히어로>.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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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저수지게임·안녕 히어로’ 등 다큐 문제작 잇달아
‘택시운전사’ 천만 이어 하반기엔 ‘1987’…상업영화도 가세
“적폐청산 과제 삼은 새 정부 탄생에 영화계도 영향 받아”
블랙리스트로 눈치보던 멀티플렉스 스크린 열며 태세전환
“진정한 시대정신 담아내려면 문제의식·표현수위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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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녕 히어로>.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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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 <택시운전사>는 29일까지 1149만8154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장훈 감독은 “<택시운전사> 흥행의 가장 큰 수확은 젊은 세대가 5·18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한 것과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인 광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꼽았다.
#2.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공영방송 수난사를 기록한 최승호 피디의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은 개봉 13일만인 29일 누적 관객 수 16만4419명을 돌파했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파업선언과 맞물리며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공범자들>은 개봉 3주차에 손익분기점인 20만명을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최승호 피디는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 덕분에 개봉 당일 180여개였던 스크린 수가 240여개까지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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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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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상업영화와 다큐영화를 막론하고 역사적·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분위기에 맞물려 영화계에서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달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작품도 많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지, 관객도 이에 계속 화답할지 관심이 쏠린다.
30일 개봉한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은 지난해 10월 개봉한 버전에 고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촛불시위 장면 등 30여분을 추가한 ‘감독판’이다. 10월 버전은 2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2016 다큐 최고 흥행작’이 됐다. 올해 5월 개봉한 <노무현입니다>가 18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노무현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진 터라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의 흥행 여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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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무현입니다>. 영화사 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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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7일 개봉 예정인 다큐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를 다룬다. 2009년 경영난을 이유로 쌍용자동차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실시하면서 촉발된 노조의 투쟁과 이로 인한 해고 문제를 가족인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명박 정권하의 가장 참혹한 노동탄압으로 기록된 이 사건을 다시 끌어냈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하는 <저수지 게임>은 ‘MB 비자금 문제’에 칼을 들이댄다. ‘2012년 대선 개표 부정 의혹’을 다룬 <더 플랜>을 만든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시사인> 주진우 기자, 최진성 감독이 다시 뭉친 작품이다. 다음달 14일 개봉하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2016년 개봉한 극영화의 미편집본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엮은 작품으로, ‘위안부 문제 재협상’에 대한 필요성을 촉구한다. 앞서 24일 개봉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사회를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는 록 밴드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보안법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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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범자들>.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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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룬 영화의 잇따른 등장에 대해 정지욱 평론가는 “영화 <공범자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제도권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과거의 적폐를 지적하고 청산을 촉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이런 ‘저널리즘 영화’가 새 정부 탄생이라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관객의 화답을 끌어내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증명하듯 지난 10년 동안 첨예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에 스크린을 열어주는 것을 꺼리던 멀티플렉스가 새 정부 들어 ‘태세 전환’을 한 것도 이런 영화의 탄생과 흥행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은 재개봉임에도 불구하고, 씨지브이 아트하우스의 협조로 첫 개봉 때보다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했다. 전인환 감독은 “지난해 10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처음 개봉할 때 스크린 30개를 열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는데, 새 정부 들어 <노무현입니다>가 770여개까지 스크린을 늘리는 것을 보고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꼈다”며 “그간 말하지 못했던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봇물 터지듯 개봉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점이 관객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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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수지게임>. 스마일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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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적폐 청산 움직임’은 <택시운전사>에서 보듯 메이저 상업영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 3월 개봉한 <보통사람> 역시 1987년을 배경으로 하면서 6월 항쟁·4·13 호헌조치 등의 사건을 소환한 바 있다. 하반기에는 <1987>이 개봉한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정권이 바뀌면서 ‘적폐 청산’은 이미 ‘시대적 과제’가 됐기 때문에 상업영화도 이런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이라며 “다만, 5·18이나 87년 민주항쟁 등을 다루면서도 상업성에 치중하다 보니 문제의식이나 표현 수위가 매우 낮거나 미온적인 측면이 있어 아쉽다”고 짚었다. 황 평론가는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메스를 들이대면서 시대정신을 고찰하는 영화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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