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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0 10:38 수정 : 2017.08.21 10:27

영화 <택시운전사>. 쇼박스 제공

개봉 19일만…한국영화 15번째 천만
가해자·피해자 아닌 ‘제3자’가 본 5·18
관객 눈높이 맞춘 덕 세대별 고른 관람

세번째 천만 송강호·유해진 명품연기
전두환 회고록 대한 공분도 흥행 한몫
“광주정신 계승한 새정부에 관객 화답”

영화 <택시운전사>. 쇼박스 제공
택시가 1000만 관객을 태우고 쾌속 질주를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택시운전사>는 이로써 올해 첫 천만 영화 기록을 세웠다. 한국 영화로는 15번째로 천만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20일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는 “<택시운전사>가 이날 오전 8시 기준으로 누적 관객 1006만8708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개봉 19일 만으로, 역대 1000만 한국 영화 중 가장 빠른 속도였던 <명량>(12일)에 이은 두번째 기록이자 <부산행>과 같은 속도다. <택시운전사>는 개봉 초반에는 <군함도>, 현재는 <혹성탈출>, <청년경찰> 등과 맞대결을 펼쳐왔지만, 개봉 3주차를 넘어서도 여전히 예매율과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택시운전사>가 어디까지 가속페달을 밟고 달릴지가 관심거리다. 역대 흥행작 1위는 <명량>(1761만여명), 2위는 <국제시장>(1426만여명), 3위는 <베테랑>(1341만여명)이었다.

영화계 극성수기인 8월 초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경쟁작을 물리치고 독보적인 흥행 스코어를 써내려간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역사적 실화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 ‘배우들의 호연’, ‘절묘한 개봉 시점과 외부적 환경’의 삼박자가 적절하게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영화 <택시운전사>. 쇼박스 제공
■ 관객 눈높이 딱 맞춰 그린 역사적 실화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제3자의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개봉한 <꽃잎>(1996), <박하사탕>(2000),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 등 5·18을 다룬 작품은 대개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광주를 그려냈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외부인인 독일 기자와 서울에서 온 택시기사의 눈으로 광주의 참상을 바라본다.

정지욱 평론가는 “광주와 전혀 관계가 없는 택시기사 만섭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 영화의 구조는 관찰자인 관객의 눈높이와 일치하게 된다”며 “5·18을 여러 경로를 통해 지켜봤을 기성세대는 물론 직접 겪지 못한 젊은 세대까지 만섭의 시점에 동화하게 하면서 폭넓은 공감을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택시운전사>를 통해 5·18을 처음 알게 됐다는 김수연(17)양은 “특별한 위인이 아닌 평범한 택시기사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니, 이해도 쉽고 감정이입도 잘 됐다”며 “영화 관람 뒤 친구들과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학교에서 잘 가르쳐주지 않는 현대사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고 말했다.

실화를 재구성하면서도 적절한 ‘양념’을 곁들인 상업영화의 흥행 공식이 20~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층을 동시에 공략하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전반부 광주로 가는 독일 기자 피터와 택시기사 만섭 사이의 언어장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웃음 코드, 영화 후반부 계엄군과 택시 사이의 극적인 추격 장면 등을 적절히 배합해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씨지브이(CGV) 리서치센터가 <택시운전사> 관람객의 연령별 분포를 분석한 결과(2~17일까지) 20대가 31.4%, 30대가 25.0%, 40대가 28.1%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50대도 9.9%의 비율을 보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다른 영화의 50대 관객 비율 7.6%에 견줘 2%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는 비율도 꽤 높았다. 리서치센터가 보통 ‘가족 단위 관객’으로 인식하는 3인 이상 예매 관객이 31.2%이나 됐다.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30대 이상 관객 비율이 씨지브이 일 평균 관람객 수치와 비교했을 때 11%나 높고, 65살 이상 ‘경로우대고객’의 비율도 2배나 됐다”며 “5·18을 어떤 방식으로든 겪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러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쇼박스 제공
■ 배우들의 호연…절묘한 개봉 시점 국민배우 송강호, 원조 명품조연 유해진 등의 연기도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 주요 요인이다. 사실 송강호·유해진은 <택시운전사> 이전 필모그래피에 이미 두 편씩의 천만 영화를 기록한 바 있다. 송강호는 <괴물>과 <변호인>으로, 유해진은 <왕의 남자>와 <베테랑>으로 천만 관객의 호응을 경험했다. 이제 이들은 세 편의 천만 영화를 거느린 배우가 됐다. ‘믿고 보는’ 두 배우가 이름값에 걸맞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은 셈이다. 정지욱 평론가는 “송강호는 생활에 찌든 소시민, 딸을 키우는 홀아비, 불의에 분노하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 등 다층적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며 “특히 영화의 후반부 ‘제3한강교’를 부르다 감정을 점차 고조시키며 운전대를 돌리는 연기는 압권”이라고 평가했다.

개봉 시점도 흥행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택시운전사>는 경쟁작인 <군함도>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했다. <군함도>가 역대 최다인 2000여개 스크린을 점유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휘말리는 ‘역풍’을 맞은 것과 달리, <택시운전사>는 1400여개로 시작해 조금씩 스크린 수를 늘려 논란을 피해갔다. 개봉 3주 전부터 전국을 돌며 대규모 시사회를 연 마케팅 전략도 입소문을 타는 데 긍정적 효과를 냈다. 최근하 쇼박스 홍보팀장은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초반부터 높은 별점을 매기고 입소문을 낸 것이 결과적으로 주효했다”고 말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쇼박스 제공
■ 정치권의 호응과 영화 외적인 논란 관객의 열광적 지지 못지않게 정치권에서도 <택시운전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연일 화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영화 속 독일 기자의 실제 모델인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뒤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도 페이스북 친구들과 <택시운전사> 관람 번개를 진행했다.

<택시운전사>는 영화를 둘러싼 외적 논란마저 호재로 작용했다. 5·18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을 받으면서 대중의 공분을 산 <전두환 회고록> 논란은 관객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재촉하게 했다. 이정인(37)씨는 “남편과 이미 한 번 관람했지만, 전두환 회고록 논란을 보고 대학 동기 몇 명과 재관람을 했다”며 “비상식이 상식을 압도했던 지난 정권의 찌꺼기를 말끔히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가 잘되길 바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새 정부 탄생과 함께 우리 사회가 공유하게 된 ‘시대정신’이 영화의 흥행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황 평론가는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행사에서 ‘5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 혁명으로 부활했다.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선언했다”며 “광주 정신이 ‘시대정신’이라는 의미인데, 이를 소재로 한 영화에 다수의 관객이 호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 역시 이런 평가의 연장선상에서 흥행의 의미를 찾았다. 장 감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광주시민의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가 이뤄졌고, 우리는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광주를 잘 몰랐던 젊은 세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상업영화다 보니 광주의 현실을 담아내는 데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 작품의 흥행을 계기로 5·18을 다룬 보다 깊이 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잉여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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