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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4 13:43 수정 : 2017.06.04 22:26

<노무현입니다> 다큐 최단기 100만 돌파
‘대의’ 지키며 고난-극복-승리…영웅서사와 유사
지지자 “눈물 흘리고 추모하며 부채의식 날려”
역대 1위 <님아> 480만명 기록 넘을지 관심
“영웅서사 2막 필요…냉철한 분석·반성 담아야”

“‘정치인 노무현’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노무현’에 감동했다.”

자신을 ‘젊은 보수’라고 밝힌 관객 허기욱(42)씨의 소감이다. 그는 지난 2002년은 물론 2007년, 2012년 대선에서 보수 후보에게 투표했다. 하지만 아내 손에 이끌려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한 뒤 ‘인간 노무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 더 영화를 관람할 계획이다.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열흘째인 지난 3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영화 역사상 최단 기간 100만 기록이다. 왜 관객들은 지금 ‘인간 노무현’을 다룬 영화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비지지자까지 사로잡은 ‘노무현 콘텐츠의 힘’ 전문가들은 첫번째 이유로 노무현 콘텐츠가 가진 힘을 꼽는다. 노 전 대통령의 도전과 좌절, 극복과 성공의 일대기가 ‘영웅서사’와 흡사해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하면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헌신적인 도움에 힘입어 반전을 거듭하며 국민경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주요하게 다룬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2%대의 지지율로 대변되는, 스스로가 자처한 고난의 길(세번의 낙선과 부산시장 도전 실패)을 가면서도 ‘동서화합’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명분을 버리지 않고, 이에 감화된 지지 세력의 힘을 받아 승리를 거두는 플롯 자체가 일종의 영웅서사”라며 “때 이른 죽음에도 ‘노무현 정신’만은 다시 살아 ‘부활’한다는 점까지도 맥을 잇는다”고 분석했다. 황 평론가는 “극영화 <변호인>(1137만여명)과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19만3천여명)의 흥행 역시 이 서사의 힘을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 인간적 면모가 허씨처럼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에는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충남지사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뿐 아니라 운전기사, 청원경찰, 그를 담당했던 전직 국정원 직원 등 39명의 인터뷰가 경선 과정과 교차 편집돼 있다. 이들은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증언한다.

김은희(41)씨는 “손수 운전해서 운전기사를 신혼여행지에 데려다준 일화, 훌륭한 인품으로 국정원 직원까지 감복시킨 일화 등에 감동받았다”며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고 했다. 영화를 만든 이창재 감독은 “정치인 노무현은 배제한 채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담는 데 집중했다”며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좋은 공기는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큰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한다”고 자평했다.

지지자들에게는 애도와 추모의 기회 상영관은 예외 없이 흐느낌으로 가득 찬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한테 이 작품의 관람은 삼켜왔던 울음을 쏟아내며 마음에 쌓였던 ‘부채의식’과 이후 보수정권에서 느껴온 답답함을 떨쳐내는 애도 또는 추모의 의식으로 공유되는 측면도 있다.

이설형(48)씨는 “노 전 대통령을 허무하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비통함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맘껏 눈물을 흘리고 추모할 수 있었다”며 “그분의 유지를 다음 세대에게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16살 아들, 14살 딸과 함께 관람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앞당겨진 대통령선거, 문재인 정부의 탄생 등도 흥행에 힘을 보탰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탄핵을 거치며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늘어났고 이것이 노무현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소구력을 만들었다”고 풀이했다. 정 평론가는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가 배급에 참여하며 7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다큐영화 최대 흥행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역시 씨지브이아트하우스가 배급을 맡았지만, <님아…>는 180여개의 스크린에서 시작해 최대 800개까지 늘어난 것에 견줘 <노무현입니다>는 애초 580여개의 스크린으로 상영을 시작했다. 정권교체로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급변한 점도 흥행 질주에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게 한다.

흥행질주 어디까지?…그리고 남은 과제들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날부터 역대 다큐영화의 기록을 고쳐 썼다. 7만8천여명이라는 오프닝 스코어는 이전 최고 흥행작인 <님아…>(8907명)의 8배에 이른다. 기록은 계속해서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초반부터 꾸준히 평일 5만~7만여명, 주말에는 15만~20만명 이상이 관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다큐 흥행 2위인 <워낭소리>(293만명)는 물론 <님아…>의 480만명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으로는 ‘노무현 콘텐츠’가 보완해야 할 과제를 제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진미 평론가는 “영웅서사 구조로 보면, <노무현입니다>는 1막에 해당한다. 2막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통령이 된 후 지지자들과 어떤 긴장과 길항의 관계에 빠지게 됐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다루는 콘텐츠가 나와야 노무현 정부로부터 무엇을 계승하고 어떤 것을 반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창재 감독은 “진영논리를 떠나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여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기획된 영화”라며 “영화를 보고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제작자·감독이 생겨나 그를 다루는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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