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04 10:27
수정 : 2017.06.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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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감독. 한겨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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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관객 돌파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 인터뷰
“정치적 공기가 바뀐 것을 확인하려는 관객들…영화가 그 매개체”
“자녀와 부모 함께보는 세대통합 영화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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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감독. 한겨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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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진영을 떠나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여는 시작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누군가는 편파성을 지적하는데, 모든 다큐는 각자 나름의 편파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편파성 속에 담긴 내용이 과연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할 뿐이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이창재 감독은 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편파성’(?)을 지적하는 공격적인 질문에 이런 답변을 내놨다.
이날 개봉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노무현입니다>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 나서 2%대 지지율로 시작해 대역전극을 펼치며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을 다룬다. “아이돌 팬클럽처럼 만들어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함께한, 인간 노무현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다룬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 “역사적 인물을 다루면서 지나치게 일부분만을 다룬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터다.
이 감독은 자신을 영업사원에 비유해 설명했다. “영업사원이 단순히 상품 문의만 들어오는 상황에서 구매 계약서를 들고 고객을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일단 상품에 대한 소개를 잘하고 나면, 그 이후엔 또 진전된 한 걸음이 시작될 것으로 믿어요.” 이 영화는 노무현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할 뿐, 노 전 대통령 집권기의 명암,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많은 질문을 다루는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했던 많은 고민에 대한 자문자답이기도 하단다.
“영화 한 편으로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아요. 제가 고향이 마산입니다. 부모님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반대쪽(보수)이시죠. 자식이 만든 영화인데도 보시고는 ‘뭐 노무현, 사람은 괜찮더라’ 하시더군요. 하하하.” 그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례한 일에 가깝다”고 했다.
이 영화가 지지자들로 하여금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상기시키고, 그것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다소 맹목적인 지지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데 대해서도 그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그런 우려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지금은 굳이 빗대자면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상황이거든요. 다들 기쁨에 들떠 만끽하고 싶은데, 거기에 감놔라 배놔라 훈수를 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모두가 차분하고 진중하게 애정 어린 비판을 하는 시기도 머지 않아 도래할 겁니다.”
영화의 흥행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 감독은 “판타지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앞서 만든 <길 위에서>(2013), <목숨>(2014) 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 그는 ‘흥행’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100만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을 던질 때 속으로 ‘5만이나 10만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라며 농으로 받아들였어요. 아, 근데 막상 100만을 돌파하니…. 이거 판타지 영화인가 싶어요.”
이 감독은 영화의 흥행요인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갈증’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정치 사회적으로 공기다운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는데, 이게 너무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상당히 오랜 시간 누리지 못해 갈증이 심했던 거죠. 관객들은 정치적 공기가 바뀐 것을 직접 더듬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상황이고, 이 영화가 그 매개가 된 것 같아요.”
<노무현입니다>가 예상외의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그는 수많은 전화와 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은 “감동적이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등의 칭찬이다. 하지만 칭찬보다, 흥행 스코어보다, 그에게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한 것은 ‘노무현을 기억하기엔 그 시절 너무 어렸던’ 20대들의 반응이었다. 한 번은 지브이(GV)를 진행하면서 자신을 압구정에 사는 강남 청년이라고 소개한 20대가 마이크를 잡았다. 대학생인 그는 “아무래도 강남에 살다 보니 주변에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노무현을 ‘정치꾼’ ,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리석은 대통령’정도로 폄훼했다. 덮어놓고 그런 줄 알았던 노 전 대통령이 이런 훌륭한 사람인 걸 몰랐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단다. 순간, 영화를 기획하고 개봉하기까지 겪었던 어떤 일보다 큰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이 영화가 ‘세대통합’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을 시작으로 해서 사실 어느 정도 ‘동서화합’은 이뤄졌어요. 그런데 이젠 세대갈등이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아들과 아버지, 손자와 할머니가 손잡고 가서 보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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