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31 15:18
수정 : 2017.05.31 15:37
부천만화박물관 <빼앗긴 창작의 자유>전
둘리가 공룡인 이유는 검열 때문이었다. 김수정 작가는 <그래픽 노블> 5월호 인터뷰에서 “말썽도 부리고 실수하는 어린이를 그리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공룡이었다고 말한다.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육영재단의 <보물섬>에 연재를 시작했다. 당시 대중매체에 그려지는 아이는 바른 생활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아이다운 아이’여야 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제·군사독재 정권은 공통적으로 만화를 ‘저급문화’로 낙인찍고 필요할 때마다 만화를 희생양 삼았다.
만화 검열의 역사를 담은 전시회 <빼앗긴 창작의 자유>전이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두 파트로 나뉜다. ‘검열의 시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시대 순으로 살펴본다. ‘빼앗긴 창작의 자유’에서는 검열받았던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한다. 검열의 시대를 통과해온 이현세·장태산·황미나·이희재 작가를 인터뷰한 영상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검열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만화가들을 압박했다. 황미나 작가는 1980년 데뷔작 <이오니아의 푸른 별>에서 쿠데타 장면을 삭제해야 했다. 3월에 원고를 완성하고 제출한 작품인데 5월17일 쿠데타를 일으킨 정권이 들어서자 상황이 바뀌었다. 황 작가는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도 증언한다. 일본 만화를 베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심의실에서는 일부 장르 작가들에게 뒷면에 검정칠이 된 작업용 종이를 나눠주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종이를 받은 것은 여자작가들뿐이었다고 한다. 여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 또한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장면 검열을 당했다.
이현세 작가의 <천국의 신화>(1997년)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이뤄진 검열의 대표적 피해 사례다. 이 작품은 ‘청소년보호법’(개정)에 의해 ‘음란물’로 고발조치된 뒤 6년간의 법정투쟁을 겪으며 작가는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사건이 없지 않다. 2011년 정연식의 <더 파이브>는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지만 다음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만화가협회가 웹툰 업체와 ‘자율규제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규제’의 권한이 민간 협의체제로 넘어오고 있는 중이다. 6월10일 오후 1시에는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5층 세미나실에서 ‘만화, 검열의 역사를 말한다’를 주제로 콘퍼런스도 열린다. 전시는 7월9일까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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