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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9 11:59 수정 : 2017.05.29 20:19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김영진의 시네마직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2013년 9월16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문화연대와 우원식 민주당 의원실 주관으로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나는 대표발제자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 해 전주국제영화에 초청되었던 백승우 감독의 이 다큐멘터리는 보수단체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큰 화제를 끌면서 성황리에 상영을 마쳤다.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은 아마 일반 극장 개봉 때도 주목을 끌 것이라고 기대한 모양이지만 9월6일 개봉한 다음날 극장에서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 영화의 상영을 철회했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들어왔을 것이라고 모두 추측했으나 자세한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선수들끼리 짜고 치는 판 비슷하게 그 날 심포지엄은 공허한 성토 끝에 끝났다. 심포지엄 관계자 일행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왔는데 마침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마치고 수많은 검은 양복 차림 경호원들과 의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걸어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과 그 주변의 의기양양한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암흑의 세월이 언제 끝나나 암담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6월 노무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며 제작비를 모으고 있던 이창재 감독과 최낙용 제작자를 만났을 때 <천안함 프로젝트> 생각이 났다. 제작비의 1/3이 모자란 상황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장편제작 프로젝트의 한 편으로 이 영화에 투자할 것을 고려하면서 나와 이창재 감독과 최낙용 제작자는 영화제에서의 상영은 잘 되겠지만 극장 개봉은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그는 개봉할 극장을 잡지 못하면 유튜브에 올리면 그만이라는 배짱을 보였다. 그 다음엔 모두 아시는 대로다. 급변한 정세 덕분에 <노무현입니다>란 제목을 단 이 다큐멘터리는 대기업 극장 체인을 통해 개봉했고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관객을 모으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이라는 하는 것처럼 비장했던 우리는 머쓱해졌다. 심지어 독립 다큐멘터리가 극장 독과점을 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노무현입니다>는 사실 편파적인 다큐멘터리다. 이창재 감독은 노무현의 편에 서서 그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노무현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극적으로 승리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현재적 시점에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끼워넣었다. 나는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방향으로 흐르는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러프컷으로 봤을 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사모의 헌신적인 경선지원 활동을 다루는 대목도 위화감이 들었다. 그 뒤 두 번 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나는 관계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후 5년간의 시간은 지지자였던 내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의석 수를 갖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집권당과 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했던 사람으로서 노무현이라는 한 출중한 정치인이 해내지 못했던 것이 실은 우리의 능력이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적어도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해보였던 이상과 명분에 헌신하기 위해 노무현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를 증언한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불같은 성격의 그가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숱한 일화들을 화면에서 들려준다. 현실에서 뭔가를 손톱만큼이라도 바꾸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내 주변의 삶을 통해 실감하는 지금, 한 정치 지도자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으나 비극적으로 끝난 삶을 반추하면서 우리 모두 다시는 그런 정치인의 삶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노무현입니다>의 힘이다. 김영진

김영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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