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22 11:40
수정 : 2017.05.22 20:11
|
영화 <언노운 걸>의 한 장면. 오드 제공
|
[권여선의 인간발견] <언노운 걸>
|
영화 <언노운 걸>의 한 장면. 오드 제공
|
<언노운 걸>에서 젊은 의사 제니(아델 에넬)는 작은 클리닉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왕진을 다니느라 바쁜 삶을 산다. 그가 더 나은 조건의 메디컬 센터로 이직하기 직전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이직을 포기하고 사건에 몰두한다. 그를 쉼 없이 움직이게 하는 힘은 죄의식이다. 그는 우리가 이 비극적인 사건에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 모호한 죄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신원미상의 소녀’는 우리가 지은 ‘신원미상의 죄’의 다른 이름이 된다.
발생한 사건은 단순하다. 클리닉의 마감시간이 지난 후 벨이 울린다. 인턴인 줄리앙이 문을 열어주려 하자 제니는 열어주지 말라고 한다. 급한 환자일지 모른다고 항의하자 급한 환자라면 분명히 벨을 더 누를 것이라고 대꾸한다. 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나중에야 벨을 누른 사람이 그날 밤 시신으로 발견된 흑인 소녀임이 밝혀진다. 그때 내가 문을 열어주었더라면….
당신이 그 소녀를 죽인 건 아니지 않으냐고, 제니를 메디컬 센터로 데려가려고 설득하던 박사가 말한다. 물론 옳은 말이며, 제니의 과도한 죄의식을 덜어주려는 선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제니의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나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죄의식을 면제해주려는 의도에서 발화된 말에서 거꾸로 우리의 진정한 과오와 책임을 또렷하게 알아본다. 당신이 그 소녀를 죽인 건 아니지 않으냐. 그럼 그 소녀를 죽인 건 누구인가. 살인자인가, 살인자로부터 소녀를 보호하지 못한(또는 않은) 우리인가.
|
영화 <언노운 걸>의 한 장면. 오드 제공
|
제니가 느끼는 죄의식의 섬세한 결을 이해하려면 그날 밤의 상황을 자세히 복기할 필요가 있다. 벨 소리가 나기 전에 한 소년이 발작을 일으켰다. 제니가 소년을 다급히 처치하면서 줄리앙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줄리앙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나중에 제니가 그에 대해 질책하자 줄리앙은 아주 무례하고 냉담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 와중에 벨이 울리고 줄리앙이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서는데 제니는 굳이 그를 제지함으로써 작은 심리적 복수를 감행한다. 신경전 끝에 벌어진 사소한 선택의 결과로 제니는 바윗덩어리 같은 죄의식을 얻는다.
|
권여선
|
제니는 집요하게 죽은 소녀의 이름과 가족을 찾아다닌다. 이전 영화인 <내일을 위한 시간>의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를 통해서 그렇게 했듯이, 다르덴 형제는 운전하는 제니의 표정,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가는 걸음걸이, 낯선 동네에서 불친절한 자들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조심스런 태도, 거절당한 후의 고요한 실망, 그만두도록 종용하는 사람들의 폭력적인 대응에 대한 공포와 위축의 몸짓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제니의 고독한 탐색을 따라간다. 우리는 죄의식을 떠안은 제니에 대한 공감과 죄의식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불편함 사이에서 흔들린다. 다르덴 형제는 여성이 낯선 거리 이곳저곳을 헤매며 타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캐물을 때 생겨나는 불안한 서사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영화의 결말은 뜻밖에 허술하지만, 제니의 끈질긴 탐문이 자아내는 아슬아슬한 리듬과 애틋한 에너지가 <언노운 걸>을 관통하는 매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
끝>
권여선 소설가
광고
기사공유하기